중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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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개기관은 채권자의 자원을 채무자에게 유용한 형태로 "재제조"하는 기관이다. 간단한 예로, 은행이 여러 명의 예금자들과 대출을 받는 한 기업을 연결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중개기관은 다양한 형태의 은행을 모두 포함하지만, 연금기금이나 생명보험사, 상호기금, 사모펀드, 헤지 펀드, 증권화 기구 등 다른 형태의 중요 중개기관들도 있다. 심지어, 기업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않고 채권자들에게 채권을 발행함으로써 돈을 조달하는 경우처럼, 금융기관의 "중개를 받지 않은" 금융 거래들 또한 일반적으로 투자은행과 같은 일종의 중재 기관을 거친다. 예금자의 돈을 모아 채무자에게 빌려주는 투자를 하는 모든 금융기관은 금융 중재기관의 기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중개기관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회적이며 다양한 존재로 만드셨으며, 대리인의 역할도 맡고, 약속을 맺으며, 신중하게 위험을 감수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은 중개기관을 통해 두 가지 주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청지기 사명을 이행하게 된다. 첫째, 그들 자신의 자원을 투자해 당사자들 간의 신뢰를 파악하고 형성해나감으로써 채무자와 채권자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여러분은 낯선 사람에게 주택 구매를 할 수 있도록 직접 돈을 빌려주진 않겠지만, 낯선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은행에게 돈을 맡기는 예금은 망설이지 않고 할 것이다. 여러분이 은행을 신뢰하는 이유는 은행이 돈을 빌릴 사람이 믿을 만한지 어떤지 확실히 알아보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둘째, 중개기관은 예금자들이 저금한 자원을 한데 모음으로써 자원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한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주택을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금액의 돈을 빌려주진 못하지만, 은행은 수천 명 혹은 수백만 명의 예금자들의 자금을 모아 대규모의 대출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중개기관이 정의를 실현하는 한 가지 방법은 서민층과 소규모 기업들에게 자원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중개기관이 없다면 가계가 자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직접 알고 있는 연줄에 한정될 것이다. 형편이 어려운 가계는 계속해서 형편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중개기관을 통해 어려운 가계는 주택, 자동차, 대학 교육 등을 위한 자원을 빌리거나 소규모의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 직접 투자자들에게 채권을 발행할 수 없는 규모가 작고 평판이 낮은 소규모 기업들 또한 마찬가지다. 이렇게 중개기관은 좀 더 정의로운 사회의 구현을 돕는다.

 

   중개기관은 채무자와 채권자가 서로를 도울 수 있게 해주며,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는 사랑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중개기관은 채무자가 가족이나 친구를 통해 돈을 빌리는 것보다 좀 더 쉽고 값싸게 필요한 자금을 얻을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채권자들에게도 돈을 침대 밑에 숨겨놓거나 지인들에게만 빌려주는 것보다 훨씬 낮은 위험과 고수익을 보장함으로써 미래를 위해 저축할 수 있게 해준다. 채권자와 채무자는 서로를 직접 만나진 않지만, 그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중개기관을 통해 정말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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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금융이 관심과 사랑의 수단이라면, 중개기관을 통한 금융 활동은 하나의 의문점을 낳는다. 우리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실제로 우리는 모르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리적 거리나 시간을 초월해 서로를 향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의 여러 가지 조직에 익숙하다. 예를 들어, 옥스팜(Oxfam)이나 월드비전(World Vision) 혹은 적십자(Red Cross)와 같은 비정부기구의 직원들과 기부자들은 전 세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향해 사랑을 실천한다. 그들이 그 대상을 실제로 알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이러한 기구들을 발전시켜나가는 것 역시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이 된다.[1] 다음과 같은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일정 기간 동안 채무자들이 자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은행에 돈을 맡기는 예금주들도 잘 알지 못하는 채무자들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청지기 사명과 사랑 사이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갈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규모가 큰 중재기관들은 전 세계의 많은 시장에서의 대출 중개 기회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청지기 사명을 더욱 잘 수행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현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소규모의 지역 중재기관들이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더욱 뛰어날 수 있다. 대규모의 국영은행은 최적의 청지기 사명을 수행할 수 있으며, 소규모의 지역은행은 좀 더 친밀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우리의 신학은 은행과 고객들이 은행의 규모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이러한 잠재적 장단점에 대해 숙고할 것을 권고한다. 만약 은행이 규모를 키우기로 결정하였다면, 은행은 규모 있는 뛰어난 지리적 청지기 사명을 향한 분명한 목표를 지녀야 한다. 그리고 만약 은행이 계속해서 작은 규모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사랑을 실천함에 있어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2] 예금자들 또한 금융 업무를 어디서 할지 결정할 때 이와 동일한 사항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Compendium of the Social Doctrine of the Church, (Pontifical Council for Peace and Justice Justice and Peace, Libreria Editrice Vaticana, 2004, Reprint April 2005), 208번째 문단에 요약된 카톨릭 교리와 일치한다.

David McIlroy, “Christian Finance?”, Ethics in Brief, Vol. 16, No. 6, (Spring 2011)는 양측을 모두 더 잘 섬기기 위한 방안으로 대출자과 저축자 사이의 "유대감" 혹은 강한 연결을 가능케 하는 어쩌면 더 작은 방식의 중개기관들을 구성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금융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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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상품이란 각각 다른 자원 수요를 지닌 둘 혹은 그 이상의 당사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약속으로, 미래가 불확실할 때 당사자들이 신중하게 위험을 감수할 수 있게끔 맞춰진 약속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창조하실 때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 그러한 창조 요소와 함께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회적이고, 다양하며, 시간의 지배를 받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신중하게 위험을 감수하는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배경 가운데 금융상품이 만들어졌다. 금융상품은 예금자와 채무자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중재기관이 "생산"한 상품으로, 이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명령을 이행하고 의미 있는 방법으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된다.

 

   금융상품은 청지기 사명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 이유는 이러한 상품들이 특정한 청지기 사명 기회의 리스크, 수익, 그리고 시간적 속성에 따라 맞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대출을 받는 기업이 진행하는 특정 프로젝트의 결과가 불확실한 미래에 달려있다면(다시 말해 리스크가 높다고 한다면), 이러한 리스크를 예견하고 예금주와 채권자가 정확히 필요한 자원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를 돕는 금융상품이 만들어질 수 있으며, 이는 자본상품의 형태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금융상품은 또한 좀 더 정의로운 사회의 구현을 가능하게 한다. 금융상품은 도움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수요에 맞춰질 수 있다. 소규모 기업을 위한 대출은 사업자들에게 사회를 섬길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제공해주는 상품이다. 학자금 대출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교육비 충당이 힘든 청년들에게 커다란 기회를 제공해주는 상품이다. 소액 대출을 위한 특별 상품 또한 정의를 실현한다. 계약금이 좀 더 낮은 특화된 주택융자와 국영 보험은 수많은 저소득층에게 내 집 마련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준다. 금융상품은 풍부한 자원을 지닌 사회구성원들이 사회의 빈곤층을 향한 정의를 실천할 수 있게끔 해주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1]

 

   주택담보대출은 금융상품을 통해 가능해진 사랑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예금자는 채무자의 가족들이 번영할 수 있는 물리적 장소를 얻을 수 있도록 채무자를 도와준다. 그 대가로, 채무자는 예금자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생계를 이어나갈 정도의 생산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노후를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나님은 창조 계획 속에서 인간이 금융상품을 개발함으로써 이렇게 의미 있고 유용한 방식으로 인류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임을 예상하셨다. 물론 채무자와 예금자는 서로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서로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기에 우리는 이러한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난한 이에 대한 자선과 이자를 부과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본 아티클의 후반부에서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