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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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일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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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 직원들은 금융 서비스의 최전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회복의 수단으로써 행할 수 있는 첫 번째 일은 금융 중개기관에서 그들이 맡은 특정한 업무가 예금자 및 채무자를 향한 정의 및 사랑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며, 그 다음 그러한 정의와 사랑을 어떻게 하면 특별히 잘 실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노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은행 대출 부서에 속한 직원이라면 채무자들의 특정 상황에 주목하자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모기지 사태에서 주목 받은 "로보 사이너(Robo-signers)" 소동은 굉장히 많은 채무자들이 금융계에서 인간관계의 측면을 더 이상 경험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요구가 전혀 관철되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은행 직원이라고 해서 모든 담보권 행사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려움에 처한 채무자들에게 개별적인 관심을 좀 더 많이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은행의 인사 담당자는 새로운 직원을 고용할 때 정의와 사랑에 대한 지원자의 열정을 특별히 눈여겨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금융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하면 자신의 업무를 통해 채무자와 채권자를 향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지 알아내지 못하거나, 그런 방향으로 조직을 변화시켜나가지 못한다면, 어쩌면 그들은 해당 조직에 적합한 직원들이 아닐 수도 있다.

 

   금융 전문가들은 금융의 두 가지 성경적 토대를 자신들이 실천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첫째, 금융 전문가들은 주로 고객의 대리인이나 청지기 역할을 맡는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개인적 이득보다 고객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둘째, 금융 전문가들은 종종 계약이나 약속을 협상하기도 하고 체결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들은 자기가 속한 조직이 합의된 약속을 수행할 능력과 의향을 지니고 있는지를 신중히 평가할 의무를 진다. 청지기 사명과 약속 이행은 말 그대로 금융의 신성한 토대이기 때문에, 금융 전문가들은 하나님 앞에서 이에 대한 본을 마땅히 보여야 한다.

 

대출 결정 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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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정 고객에게 대출을 해줄 것인지의 여부, 그리고 만약 해준다면 어느 정도의 이자율을 책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의 금융 신학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여기서 몇 가지 성경적 금융의 토대가 부각된다. 우선 은행원들은 전지전능하지 않기 때문에, 잠재적 채무자의 상황과 필요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고 해야 한다. 은행원들은 채무자로 하여금 대출이 그들에게 실제로 이익이 될 것인지의 여부를 평가하고, 대출금을 생산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그런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둘째로, 채무자나 채권자 모두 미래를 알지 못하므로, 둘 다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신중하고 보수적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두 당사자는 대출기간 동안 잘못될 수 있는 일, 그리고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 속에서 회복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신중하게 의논해야 한다.

 

   셋째로, 은행원은 채무자를 향한 정의와 사랑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대출 상품을 채무자에게 안내해줄 수 있다. 채무자가 어려움 없이 상환할 수 있는 대출이 바로 정의롭고 사랑을 베푸는 대출이다. 초반에는 금리가 낮았다가 시간이 갈수록 높아져서 채무자를 어렵게 하는 대출이 아니라면, 정의롭고 사랑을 베푸는 대출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신용카드와 같이 미래에 더 많은 빚을 지게 할 수 있는 대출은 정의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금리는 대출의 리스크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는 채무자가 리스크에 따라 조정된 대출 수익을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리가 너무 높아 채무자가 번영하지 못한다면, 이는 금융의 성경적 목적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성경 원칙은 채무자의 신용 상태에 비해 시중금리가 터무니없이 높아 채무자가 감당하기 어려울 경우에 대한 방침을 몇 가지 제시하고 있다. 첫째, 정부 보조를 받는 금리로 대출을 전환한다. 둘째, 금리가 높다고 하더라도 채무자가 대출금을 생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셋째, 채무자가 대출을 받기보다는 정부나 자선 단체를 통해 자원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 넷째, 채무자가 대출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가난한 이들에게 대출을 제공하는 일이 가장 성경적으로 이행되는 경우는, 비영리 단체가 금융 및 생계 상담과 함께 제로 금리로 대출을 제공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1] 이러한 해결책들의 일부는 우리가 앞서 정의한 금융의 범위를 벗어나지만, 어쩌면 가난한 사람이 처한 복잡한 재정 상황을 헤쳐 나가도록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이들이 금융기관의 직원들일 수도 있다. 이는 금융 관련 직업이 요구하는 일과 근무 시간을 넘어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될 수 있다. 가난한 이들에게 대출을 해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성경도 해당 주제를 매우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2]

 

 

McIlroy, “크리스천 재정?(Christian Finance?)”는 이것을 "너그러움의 미덕(virtue of generosity)"라 일컫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무이자 대출과 다른 지원들을 요구한다.

소액금융(microfinance)은 가난한 이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공동체에 널리 퍼져있는 높은 이자율의 대출의 한 예시이다. 이 모델이 특정 문화에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난한 이들에게 높은 이자를 부과하는 것을 성경적인 모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헤지 펀드에서 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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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지 펀드는 보통 개인 예금자는 이용할 수 없는 특화된 금융 상품에 투자하는 상호 기금이다. 헤지 펀드는 보통 규제가 덜하고, 차입금이 많으며, 보다 다양한 종류의 금융 상품에 투자될 수 있고, 다른 일반적인 상호 기금보다 높은 운용 수수료를 청구한다. 최근 헤지 펀드가 뉴스의 관심을 받은 것은 여러 명의 펀드 매니저들이 막대한 금액의 운용수수료를 벌고, 또 몇몇 펀드 매니저들이 내부자거래 혐의로 기소되고, 주가의 급격한 하락이 헤지 펀드의 탓으로 돌려지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헤지 펀드는 우리가 세운 금융의 틀을 적용해서 이해해볼 수 있다. 헤지 펀드는 리스크에 따른 고수익, 경기 순환과의 연관성이 적은 예금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예금자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다. 많은 헤지 펀드는 파생상품에 투자를 하고, 파생상품 계약에서 채무자 쪽의 당사자들에게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이는 투자자들에게도 해당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헤지 펀드는 리스크를 줄이고자 하는 기업들에게 사랑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헤지 펀드는 증권 시장에서 과다 공급된 제품을 사들이고 공급이 부족한 제품은 판매하는 사업을 하는 일종의 도매상들로 간주되며, 따라서 이들은 수익을 올릴 시도를 할 뿐만 아니라 시장이 더욱 원활해질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이들은 증권 가격이 좀 더 정확하게 내재적 가치를 반영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사회에 이바지한다고 할 수 있다.

 

   헤지 펀드 투자라는 것은, 어떤 종류이건, 그 고도의 복잡성 때문에 이들이 정확히 어떻게 정의와 사랑을 가져오는지를 우리는 쉽게 밝힐 수가 없다. 만약 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모든 교환이 자발적이고 시장 시세를 따른다면, 각 당사자는 저마다 이득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고 간주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한 복잡성 뒤에는 보조금, 힘의 불균형, 정보 비대칭, 탈세 등 금융의 성경적 토대를 침해하는 요소들이 교묘하게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일부 헤지 펀드의 경우, 특정 투자 전략으로 인해 예금자와 채무자를 향한 사랑이 어떻게 실천되고 있는지 어느 정도 확실히 아는 것이 가능하지만, 다른 헤지 펀드들은 이러한 일이 쉽지 않다. 금융 전문가와 투자자들은 특정 헤지 펀드 혹은 투자가 선한 청지기 사명, 정의, 사랑으로 이어지는지, 혹은 헤지 펀드 매니저들이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면서 자신들의 수익을 최대한으로 올리고자 하는지를 끊임없이 살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