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핍한 이웃을 위해 일하라(약1:22-28)

아티클 / 성경 주석

  위의 진리는 충성된 일의 두 번째 원칙, 곧 궁핍한 이웃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것을 다루게 해 준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이것은 첫 번째 원칙, 곧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남들의 유익을 위해서도 자유롭게 일하게 된다. 반대로 하나님을 신뢰한다면서 궁핍한 이웃을 돕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을 진정 신뢰하지 않는 것이라고 야고보는 지적한다. 야고보가 말했듯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다(약 1:27). 신앙은 신뢰를 뜻하며, 신뢰는 행동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야고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께서 여러 소외계층에게 직접 실천해 보이신 모습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또 야고보는 하나님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특별한 자리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약 2:5; 눅6:20)을, 보물을 “땅에 쌓아” 썩혀 버림에 대한 경고(약 5:1-5; 마 6:19)와 결부시킨다.


   이 진리는 우리의 일터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왜냐하면 남의 필요를 채우는 것은 성공적인 일터의 으뜸가는 표상이기 때문이다. 그 일터가 기업이든, 교육의 장이든, 건강 관리든, 행정 공무든, 전문직이든, 비영리직 또는 다른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성공적인 조직체는 그 소비자, 직원, 투자자, 시민, 학생, 고객 또는 다른 주주들의 필요를 채우기 마련이다. 물론 이것이 야고보의 중점 사안은 아니다. 그는 빈민과 약자들의 필요에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기는 하되, 그럼에도 여전히 실용적이다.한 조직이 사람들의 진정한 필요를 채울 때,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것이다.


   야고보는 두려움을 계속 직시하고 믿음의 시련을 직접 맞닥뜨리라고 요청한다. 당신이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시련에 직면한다면, 하나님은 그 시련을 통해서 궁핍한 자들을 돌보는 당신의 역량을 배가시켜 주신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되지 말라”(약 1:22).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궁핍한 자들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당신은 자신을 속이는 거라고 야고보는 풀이한다. 그건 진정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왜?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있다면, 아마 당신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일하느라 너무 바쁘기 때문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만약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서 일한다면, 아마도 하나님이 당신을 돌볼 것이라는 믿음이 없어서이리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일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아서다. 혹은 야고보가 말하듯,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7). 야고보는 예수님의 가르침을(특별히 다양한 소외계층과 가난한 자들을 실제로 돌보신 것을) 경험했기에 이런 통찰력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은 특별히 예수님이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그들의 것이라고 가르친 사실(약 2:5; 눅 6:20)이며, 아울러 “이 땅”의 썩어질 재물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약 5:1-5; 마 6:19)를 언급하는 부분에서도 야고보의 암시를 발견할 수있다.


   이것은 성공적인 조직의 첫째 조건을 충족시키기 때문에 우리 일에도 직접 적용할 수 있다. 성공적인 조직은 손님, 고용인, 주주, 주민, 학생, 고객과 다른 주주들의 요구를 충족시킨다. 야고보는 사실 처음부터 이런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주요대상으로 삼았다. 그래도 이 원칙은 적용할 만하다. 어떤 조직이 사람들의 진정한 필요를 채워 줄 때가 바로 하나님이 함께 역사할 때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기업의 고객 서비스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크리스천들이 ‘기업에게 고객 대접을 받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줄 때 오히려 더 큰 창조력이 필요하며, 하나님의 베푸시는 손길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어떤 크리스천 그룹이 베트남에서 사회 ·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그곳에 가구 공장을 설립했다. 그 공장을 통해 하나님은 가구가 필요한 해외 고객들과 전에 실직자였던 지역 노동자들의 필요를 동시에 채워 주셨다.[1]


   이와 비슷한 사례로, 글로리아 닐런드(Gloria Nelund)가 이끄는 트릴링크 글로벌(TriLinc Global)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개발도상국 내 창업을 돕는 투자회사다.[2]


   크리스천들의 의무는 각자의 직업을 통해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회 구조와 정치 · 경제적 시스템은 빈민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크리스천들도 이런 구조와 시스템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까지, 우리에게는 빈궁한 사람들의 필요뿐만 아니라 부유층과 권력자들의 필요도 채워 줄 책임이 있다.

 TOW 프로젝트 팀 편집장인 윌리엄 메신저(William Messanger)가 2010년 7월 29일 홍콩에서 인터뷰한 내용이다. 본인 요청으로 실명은 밝히지 않겠다

 Al Erisman, “Gloria Nelund: Defining Success in the Financial World,” Ethix 80 (March/April 2012), available at http://ethix.org/category/archives/issue-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