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은 사람을 압제하지 않으며, 빚진 자에게 저당물을 돌려준다 (겔 18:5, 7)

아티클 / 성경 주석

   이 원리는 일반적인 학대죄(히브리어로 daka)에, 빚을 내주기는커녕 받아갔던 저당물까지도 돌려주지 않는 죄(habol)까지 다룬다. 이 원리를 이해하고 적용하기 위해 이스라엘 대부법부터 살펴보자. 《앵커 예일 성경사전》(The Anchor Yale Bible Dictionary)에서는 그 법을 이렇게 요약한다.

 

히브리 성경에서는 빚의 필연성을 공개적으로 인정한다. 이에 자연스럽게 채무자에게서 이자를 요구하는 관습을 막는 방도를 고안해 내야 했다. 고대 근동에서 채무 이자는 현대 기준에 비추어 보면 과도했을 수 있다. (빌릴 때 빚의 원금에서 이자를 미리 공제했을 수도 있다.)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잠재적인 이자를 미리 걷는 일은 부당했다. 하나님께서 노예 신분에서 해방해 주신 공동체를 공적으로 보호하는 것과 같은 차원으로 이해하면 된다. 형제가 가난해져 돈을 빌려야 할 상황에 처하면,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레 25:35-38)의 이름에 근거하여 이자를 강제로 징수하면 안 되었다. 이자를 받으려는 욕망은 이스라엘이 경제적 압박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억압으로 노예를 교환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는 것으로 보였다. 레위기 25장 전체에서 하나님의 구속의 온전함을 유지하는 문제를 다룰 때 안식일과 희년에 이루어져야 할 해방(레 25:1-34), 빚(레 25:35-38), 고용살이와 관련한(레 25:39-55) 내용을 매우 자세히 다룬다. 돈을 빌려주면서 담보를 받는 것은, 후일에 이자를 받지 못하더라도 용서하겠다는 암묵적인 인정이었다. 또한 받은 담보를 함부로 사용하는 것도 금지했다(출 22:25-27; 신 24:10-13). 그러나 어떤 담보는 (바르게 다루기만 한다면) 이윤을 낼 수 있었고, 담보를 받았다 해도 외국인에게는 어떤 경우 이자를 징수할 수 있었다(신 23:19-20 - 토라의 엄격한 해석에 따라서 채권자는 생활을 꾸려 갈 수 있었다.)[1]

 

   모세 율법에 따르면, 빚 보증으로 받은 담보물은 영구히 소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대 은행법에서는 (전당포처럼) 빌려주는 사람이 보증으로 받은 물건을 보유하거나 (자동차 대출이나 주택담보 대출에서처럼) 회수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의 전체 보증 체계가 반성경적인지 아닌지는 이 글에서 다룰 바가 아니다. TOW 웹사이트 핵심 주제 코너에서 “금융” 부분을 보라.모세 율법에 따르면, 빚 보증으로 받은 담보물은 영구히 소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대 은행법에서는 (전당포처럼) 빌려주는 사람이 보증으로 받은 물건을 보유하거나 (자동차 대출이나 주택담보 대출에서처럼) 회수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의 전체 보증 체계가 반성경적인지 아닌지는 이 글에서 다룰 바가 아니다. TOW 웹사이트 핵심 주제 코너에서 "금융" 부분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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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현대 법률은 빌려준 사람이 담보물을 소유하는 과정을 규제하는 한편 한계를 둔다. 예를 들어, 채무자가 파산 절차를 밟으며 법의 보호 아래 있는 동안 채권자가 저당 잡힌 주택을 점유하고 채무자를 강제로 쫓아내는 것은 불법이다. 일종의 억압이기 때문이다. 물론 채권자가 면책권을 가지고 있거나 법의 테두리 밖에서 처리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에스겔 18장 7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아무리 벌을 모면할 권력이 있더라도, 마땅히 자신의 소유인 듯 보이더라도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법을 어기지 말라!” 오늘날 상업적 관례에서는 사채업자를 빼고는 거의 모든 채권자들이 법을 어기면서까지 강제로 담보물을 회수하진 않는다. 따라서 에스겔 18장 7절 말씀은 합법적인 사업을 하는 현대인에게는 전혀 이의 제기를 하지 않는 셈이다.

 

   여기서 잠깐 눈여겨볼 것이 있다. 구약 전체에서 대부법은 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주로 빌리는 사람 편이었다. 비록 해가 질 때까지만 겉옷을 보관할 수 있을지라도, 겉옷을 담보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이유는, 당신에게 여유 자금이 있고, 빌리는 사람은 돈이 필요한 궁핍한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빌려주는 사람으로서 당신은 돈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보증을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빌리는 사람이 그 돈으로 충분히 이익을 보아 돈을 다시 갚을 수 있을 때만 돌려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또한 담보물을 무기한으로 가지고 있을 수 없기에, 빌리는 사람이 돈을 갚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사실을 알면 저당을 잡고 돈을 빌려줘서는 안 되었다.

 

   2008-2009년에 미국에서 발생한 주택담보 대출 위기를 보자. 서브프라임 대출을 실행한 금융기관들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최우대 대출금리보다 낮은 주택자금 융자를 갚지 못하리란 것을 알면서도 빌려주었다. 이 금융기관들은 자기들의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주택 가격이 상승할 경우나 빌린 사람이 채무 이행을 못할 경우에는, 자기네들이 부동산을 팔거나 회수할 수 있다고 믿었다. 빌리는 사람의 이익은 생각지 않고, 오직 자기들의 이익만 생각하며 돈을 빌려준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상황이 벌어지자 어떠했는가? 수백만이 넘는 주택에 대한 담보권을 한꺼번에 행사하면서 시장에 부동산 매물이 쏟아져 나왔고, 연쇄적으로 부동산 가치는 무섭게 하락했다. 그 바람에 부동산을 회수한 금융기관들도 손실을 입었다. BC 580년경에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 18:13)라고 압제자들에게 선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AD 2000년경의 은행 제도에서 사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에스겔 18장 7절은 빚에 관한 것이지만, 같은 원리를 모든 종류의 상품에도 적용할 수 있다. 상품의 결점이나 위험성 여부를 알려 주지 않는 것, 구매자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비싼 상품을 판매하는 것, 제품의 장점을 구매자의 필요에 부적당하게 맞추는 것과 같은 모든 관행은 에스겔 18장 7절에 나온 학대나 다름없다. 구매자의 안녕을 거래에서 침범할 수 없는 목표로 삼지 않는 한, 그러한 관행들은 선의의 사업에도 서서히 파고들어올 수 있다. 에스겔의 용어를 빌면, 구매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겔 18:9).

 vol. 2, The Anchor Yale Bible Dictionary, ed. David Noel Freedman (New York: Doubleday, 1996), 1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