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역사에서 선지자들의 위치

아티클 / 성경 주석

   이스라엘이 사울과 다윗, 솔로몬 왕의 치하에서 통일왕국을 이루고 있던 시대에는 선지자들의 사역이 별도의 기록 문서 없이 여호수아서에서 열왕기하에 걸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 함께 엮여 있었다. 이러한 양상은 통일왕국이 분열되어 이스라엘 열 지파의 북 왕국(이스라엘)이 곧바로 우상숭배에 빠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는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민족에게 오로지 여호와만을 예배할 것을 촉구하도록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다.[1] 최초의 기록 선지자[2] 가운데 하나인 아모스와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 왕부터 호세아 왕에 이르기까지 배교한 북 왕국 왕들에게 도전했다. 왕들과 백성들 모두 여호와께로 돌아오기를 거부하였으므로 BC 722년, 하나님은 강력한 앗수르 제국이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도록 허락하셨다. 잔인하고 무자비한 앗수르 사람들은 북이스라엘의 도시와 마을들을 파괴해 재물을 전리품으로 약탈했으며,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 제국 전역에 흩어 놓음으로써 국가의식을 영원히 말살하려고 했다(왕하 17:1-23).

 

   일찍이 하나님은 요나에게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앗수르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촉구하라는 임무를 부여하셨다. 앗수르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원수였지만, 아브라함의 자손이 모든 민족에게 복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그들도 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뜻이었다(창 22:18). 요나는 여호와의 신실한 일꾼이었음에도 적을 돕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는 달갑지 않은 명령이었다. 동시에 하나님께 등을 돌려 버린 이스라엘이 너무나 멀리 떠났기 때문에 앗수르 사람들의 손에 멸망당하는 일은 불가피했다.

 

   이스라엘의 멸망이 가까워지면서 남 왕국 유다 백성들은 여호와와 이방신 사이에서 왔다 갔다 곡예를 하고 있었다. 선왕들은 백성들이 우상숭배와 악한 사업 관행을 멈추도록 했으나, 악한 왕들은 이를 다시 되돌려 놓았다. 남유다 최초의 기록 선지자는 오바댜와 요엘이었다. 이들은 여호람 왕, 아하시야 왕, 요아스 왕, 아달랴 여왕 치하에서 내부고발자 역할을 했다.

 

   이사야는 같은 시기에 예언한 미가 선지자와 함께 남유다의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등 네 명의 왕들 치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했다. 므낫세는 히스기야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는데, 성경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그가 이전 어떤 왕들보다도 심각한 악을 저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왕하 21:2-16).

 

   선왕 요시야는 므낫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성전에서 행해지던 이방 예배의식을 제거하며 성전을 정결케 했다. 이때 성전을 청소하던 백성들이 그 땅에 내릴 심판을 기술한 고대 두루마리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유다에서는 여호와를 향한 경배를 회복했다. 당시 예루살렘의 선지자로 예레미야와 스바냐가 있었다. 이들이 예루살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은 이들이 아닌 여자 선지자 훌다에게로 나아가 왕을 위해 이 율법서를 해석하도록 했다.

 

   요시야 이후의 왕들은 끔찍한 정치적 결정을 많이 내렸고, 그 결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2세 왕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기에 이른다(왕하 23:31-24:17). BC 605년, 느부갓네살은 1만 명의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로 데려갔다. 선지자 에스겔은 이들과 함께 포로로 끌려갔고, 하박국은 예레미야 및 스바냐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선지자 사역을 계속했다.

 

   BC 589년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에 대항하기 위해 이웃 국가와 동맹을 맺자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2년 이상 포위했다(왕하 24:18-25:21; 대하 36장). 결국 예루살렘은 BC 586년에 항복했는데, 그 주된 이유는 기근이었다. 성전과 궁전을 포함해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예레미야는 애굽으로 가기 전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며 유다에 남아 있는 궁핍한 자들을 위해 선지자 사역을 계속했다. 한편 에스겔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에게 예언 사역을 계속했다.

 

   BC 605년, 바벨론으로 끌려간 1차 유다인 포로 가운데 어린 다니엘이 있었다. 하나님은 그를 모든 바벨론 왕들의 궁정에서 사용하셨다. 바벨론이 BC 539년에 멸망했을 때, 메데-바사의 왕 고레스는 유다 백성들이 유다로 돌아가 그들의 성과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했다. 처음에는 스룹바벨, 이후에는 느헤미야의 감독하에 재건이 이루어진다. 다니엘의 예언 활동은 바벨론 포로 유배(단 1:1)부터 유배를 종식시키는 고레스의 칙령 선포 시기(단 10:1)까지 지속되었다.

 

   바사 왕들은 유다 백성들을 다양한 태도로 대했다. 캄비세스 왕(BC 530-522년)은 예루살렘 재건을 중단했으나, 다리오 왕(다리우스 1세, BC 522-486년)은 두 번째 성전을 완공했다(스 5-6장). 여기서 포로기 후기 선지자들인 스가랴와 학개는 유다 백성들에게 도전을 던졌다. “하나님의 성전은 황폐되어 있는데 너희는 화려하게 꾸민 집에 사는구나. 성전을 위해 무언가를 하라!”

 

   아하수에로 왕(BC 486-464년)이 다리오 왕을 계승했고, 에스더서 1-9장에 그의 통치 시기에 있었던 일을 기록했다. 이어 아닥사스다(BC 464-423년)가 왕이 됐는데, 그가 통치하는 동안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고(BC 458년-스 7-10장), BC 445년에는 느헤미야가 그의 뒤를 따라 돌아왔다(느 1-2장). 포로 후기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가 책을 기록한 것이 바로 이 시기였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아합, 아마샤, 여호람 및 예후의 통치 기간 동안 예언한다.

후기 선지자인 기록 선지자들은 전기 선지자들과 달리 하나님의 이상과 꿈, 계시를 기록물로 남겼다. 이들은 이사야서에서 말라기에 이르는 구약 성경 마지막 17권의 책을 기록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등 네 선지자들은 방대한 기록을 남겼고, 나머지 선지자들은 자신의 예언 사역을 비교적 짧은 기록으로 남겼다. 이들의 말은 전기 선지자들처럼 역사서를 통해 전해지지 않고 문학의 일부로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