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을 위한 복

아티클 / 성경 주석

   ‘모든 사람들을 위한 복’은 공공선을 확장한 개념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 인류에게 복의 근원이 되기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바벨론을 위해서도 마땅히 기도해야 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3).

 

   철저히 좌절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심지어 적들에게조차 복이 되도록 부름을 받는다. 이 복은 예레미야 29장 7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물질적인 번영까지 포함한다. 1-25장을 보면 유다의 신실하지 못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평화와 번영을 철회하셨다. 그런데 29장에서는 바벨론이 유다의 하나님을 믿지 않을지라도 바벨론에게 평화와 번영의 복을 주시기를 원하신다니, 얼마나 모순인가! 왜 그러시는 걸까? 만민에게 복의 근원이 되라고 이스라엘을 부르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크리스천들의 특별한 유익을 위해 작정하신 어떤 계획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크리스천들은 직장에서 효과적으로 경쟁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이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리라 기대하면서 수준 이하의 업무 수행을 해서는 안 되며, 그리 되지도 않는다. 크리스천들이 세상을 복되게 해야 한다면, 능력을 갈고 닦아 대등한 경기장에서 경쟁에 참여해야 한다. 한 무역협회가 공급자 우선관계나 고용 선호, 세금 또는 정규적인 이익, 혹은 크리스천들에게만 유익하도록 고안된 어떤 체계를 채택해 실행한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도시를 축복하는 일이 아니다. 1800년대 중반 아일랜드에 기근이 들었을 때, 많은 성공회 교회들은 로마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개종하겠다는 사람들에게만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 물론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였고, 그 결정은 150년이 지난 지금도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한 기독교 종파가 다른 종파를 배제하면서 자기 식구들만 챙기는 행위였다. 비기독교인들을 차별하는 기독교인들이 일으킨 훨씬 더 큰 손해를 상상해 보라. 그런 차별이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역사의 페이지를 채우고 있다.

 

   하나님께 신실한 크리스천들이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닌 사람들에서 시작해 하나님의 백성인 자신들에게까지 확장되어)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한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최선의 길은, 바로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레미야서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경제 원리다. 성공하는 사업가들은 상품 개발과 마케팅, 판매, 고객 지원 등이 고객을 최우선으로 할 때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든 아니든 이것은 모든 근로자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실천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