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은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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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국가 지도자들은 착취, 무력, 부패, 갈취 등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 또는 부를 얻는다. 잔혹한 독재자 및 정권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빼앗으며 국민들을 무력과 협박으로 탄압하고 다른 이들이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칠 때, 자신들은 호화로운 삶을 살아간다. 버마, 짐바브웨, 리비아 등 이러한 국가들은 수도 없이 많다.

 

   어떤 다국적기업들은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 노동이 값싼 시장을 착취하고, 절실한 이들에게 위험한 근로 환경을 강요하거나 현지 생태계를 파괴한다. 이렇게 사람들과 그 지역을 해치면서 얻은 이윤은 본국 규제기관들의 감시망을 피하며 해당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도 이를 알지 못한다.

 

   어떤 개인과 조직은 개인투자자에게 사기를 치거나 속임수를 써서 이들이 그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무시한 채 굉장히 큰 위험을 떠안게 만든다.

 

   이 같은 경우는 다른 이에게 해를 가하면서 자신은 이득을 취하는 방법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러한 부당함은 종종 "재물, 권력, 또는 식량을 향한 강력하고 자기중심적인 열망"과 같은 욕심으로 인해 비롯된다.[1]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교회에 있을 때, 그는 이러한 문제에 맞서 디모데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9-10)

 

   그러한 욕심은 우리 자신의 영적 상태를 해치고 다른 이들을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만드는 것 이외에 다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 예로, 탐욕은 환경을 파괴하기도 한다. 즉, 지구를 심하게 파괴하여 궁극적으로 다른 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식량도 줄어들게 된다.

 

   안타깝게도,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부정한 방법으로 부유해진 사람들이 꽤 있었다. 사실 예언서가 전하는 메시지 대부분도 이스라엘 내 권력 있는 부유층이 저지르는 경제적 부당함을 겨냥해 쓰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스, 미가, 그리고 예레미아와 같은 대변자들을 통해 우리가 만일 이웃을 착취함으로써 부를 축적한다면 우리의 예배는 무의미하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우리가 이웃을 대하고 일을 할 때도 실제로 그런 모습이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에 심판이 내려졌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암2:6) 이러한 질책은 언약적 책임을 어긴 이스라엘이 응당 받아야 할 결과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은 변함없는 사랑, 공의로우심, 그리고 의로우심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2] 즉,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은 언약공동체에서도 나타나야 하는 필수적인 요소임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약자를 포함한 사회의 모든 일원이 자원을 얻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언약적 책임 중 하나였다.

 

   애석하게도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인정을 베푸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법체계는 도외시되고 무시되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샬롬(‘평화’를 뜻하는 히브리어_역자 주)을 본보기로 따르기는커녕, 억압과 권력 남용의 소굴이 되었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해버리는 등 다른 국가와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부자들은 땅의 대부분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이는 레25:25-28을 위반함), 소작농들에게 이자를 받고 빌려주었고 (이는 신23:19-20에서 금하고 있음), 이는 채무불이행으로 이어졌다. 또한 부자들은 뇌물로 사법제도를 왜곡시켰다. 그 결과, 생계를 이어나기 힘들었던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팔아 노예가 되었다.

 

   이에 따라 선지자 아모스는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5:24)라고 간청하였다. 미가는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돈을 벌고, 다른 이들을 고용하거나 관리하며, 사업을 하고, 투자를 하며 돈을 소비하는 방식은 정의로울 수도, 또는 부당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분리할 수 없다. 우리는 부를 추구하기 위해 남을 착취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The Concise Oxford Dictionary. 10th ed., revised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Walter Bruggemann의 강의 본문, “The Continuing Subversion of Alternative Possibility: From Sinai to Current Covenanting,” Laing Lectures, 2008, Regent College, Vancouver, Canada으로부터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