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일꾼, 공정하다(잠 3:27-28; 8:15; 14:21, 31; 16:8, 12-13; 17:5; 21:6, 13; 22:8-9, 16, 22-23; 24:17; 25:

아티클 / 성경 주석

 

   잠언은 관대함을 권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공의로운 일이라고 주장한다. 첫째,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부자와 권력자들이 그들을 편취하거나 억압하기 때문이라고 인정한다. 더구나 가난한 이들에게서 편취하고, 그들을 억압하는 일은 더욱 쉽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혐오하시며, 그런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잠 14:31).

이익을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니라(잠 22:16).

약한 자를 그가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신원하여 주시고 또 그를 노략하는 자의 생명을 빼앗으시리라(잠 22:22-23).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잠 22:8-9).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늘이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해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잠 28:8).

 

   첫 번째 기본적인 원리가 잠언 16장 8절에 나와 있다.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두 번째, 비록 당신이 가난한 사람들을 편취하거나 억압하지 않았다고 해도,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서 당신은 그들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채워 주는 일부터 시작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잠 21:13).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잠 14:21).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잠 3:27-28).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잠 17:5).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에서 지혜가 나온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관대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공의를 좇아서 궁핍한 사람들을 돕는 일 또한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혜는 우리가 세상을 향해 그분이 바라시는 바를 행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 때 생겨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돌봐 주어 궁핍함을 없애려 하신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들을 돌보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궁핍을 없애는 일은 공의의 문제다.

 

   이 잠언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직접적 접촉을 가정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관대함이란 기부금을 내는 것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는 것이며, 함께 살아가는 것일 것이다. 또한 주거, 쇼핑, 교육, 일, 정치 등과 관련해서 가난한 사람들과 중산층 및 부유층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일을 의미할 수도 있다. 당신은 다양한 사회 · 경제적 수준의 사람들과 매일 접촉하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세계는 너무 편협한 것일지 모른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관대함과 공의는 근로자 개개인에게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덕목이 우리 회사에도 적용이 가능할까? 대부분의 잠언은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용감한 여인 부분에서는 그녀를 한 가업의 관리자로 묘사한다. 그리고 우리가 보아 온 대로, 그녀의 관대함은 그녀의 일에 방해 요소가 아니라 필수 요소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많은 기업들은 주주들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유익이 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데 필요한 상상력이나 기능이 부족한 듯 보인다. 예를 들어서, 신문의 금융 면을 잠깐 훑어보기만 해도 많은 회사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편취하거나 억압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압력을 가하여 재산을 정가 이하로 팔도록 하는 것이나, 그들의 무지를 이용한다거나 그릇된 정보를 제공하여 의심스러운 제품을 팔려 한다거나, 취약한 사람이나 다른 삶의 대안이 없는 이들로부터 과도한 단기 이윤을 짜내려 하는 일 등 말이다. 왜 그런 회사들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재물을 탈취하는 것이 이윤을 내는 유일한 (또는 최선의) 방식이라고 믿는 것일까? 제로섬 접근법을 써서 기업이 실제로 이해관계자의 투자 이익을 향상시킨다는 증거가 있던가? 이런 관습 중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진실로 더 높은 장기적 수익성이나 권력으로 연계되는 것일까? 아니, 그와는 정반대다.

 

   최고의 기업은 고객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상품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직원과 주주와 투자자들에게 훌륭한 수익을 제공하기 때문에 성공한다.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기업과 조직들은 경제적 · 정치적 · 경쟁적 위협으로부터 공동체 차원의 지원, 일꾼들의 헌신, 사회적 보호가 필요할 경우 보다 유리한 위치에 놓일 것이다.

 

공의를 추구하는 정부 정책

 

   잠언은 기업 이외의 다른 조직에게도 공의를 요구한다. 특히 왕을 언급하는 많은 성구에서는 정부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정부에도 기업과 같은 메시지를 준다. 정부는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을 돌보며 그들에게 공의를 행할 경우에만 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있다.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잠 29:14).

왕은 정의로 나라를 견고하게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잠 29:4).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의 왕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잠 25:5).

의로운 입술은 왕들이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하게 말하는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니라(잠 16:13).

악을 행하는 것은 왕들이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잠 16:12).

 

   지혜로운 정부의 기초 역시 여호와께 대한 경외심이다.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잠 8:15). 왕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잠언들은 현대 사회의 정치 지도자와 공무원들에게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주 사회에서는 모든 시민들이 정부 및 공공 정책에 참여한다. 대표자들과 접촉하고 후보자를 위해 투표하며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한 사람들에게 공의를 가져다주는 참정권 문제는 오늘날 지혜에서 기인한 공의를 입법화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모두가 번성하기 위한 경쟁

 

   잠언은 경쟁과 투쟁에도 관대함과 공의를 요구한다. “네 원수가 배고파 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잠 25:21-22).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20절에서 이 잠언을 문자 그대로 인용하면서 전할 말을 결론짓는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

 

   더 나아가서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잠 24:17). 원수에게도 너그러워야 한다고? 사도 바울과 잠언 저자들은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여호와께서 보상을 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것이 개인적이든(예를 들면 승진 경쟁자) 집단적이든(예를 들면 경쟁사) 간에 경쟁자를 향한 우리의 태도에도 적용될까? 잠언에 현대적 경쟁 이야기는 없다. 그러나 만일 원수에 대한 섬김까지도 장려한다면, 경쟁자에 대한 섬김 역시 장려하게 된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것은 공모나 과두정치와는 다르다.

 

   시장 경제가 거의 전 세계적으로 우세하다는 것은 경쟁 때문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기업, 정치 그리고 다른 형태의 경쟁은 중대한 경쟁적 국면을 띠고 있지만, 실은 협력의 형태들이다. 사회가 경쟁을 촉진하는 것은 모두가 번성하기 위함이다. 경쟁에서 실패한 것에 대한 정당한 보응은 궁핍으로 내몰리는 게 아니라, 더 생산적인 일로 전환되는 것이다. 많은 회사들이 도산하기도 하지만, 성공적인 경쟁자들이 반드시 독점하는 것은 아니다. 선거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뉘기는 하지만, 승자가 헌법을 개정하여 패자를 유폐시키는 것은 아니다. 경력에 부침이 있겠지만, 실패에 대한 정당한 보응은 “당신은 이 도시에서 다시는 일을 하지 말라”가 아니라 “당신의 재능에 더 맞는 일을 찾도록 도우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다.

 

   지혜로운 개인이나 조직은 경쟁에 참가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경쟁은 각자의 참여를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오늘 실패한 사람을 연착륙시켜서 내일 값진 기여를 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