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일꾼, 신뢰할 수 있다 (잠 3:7; 6:11-19; 8:6-7; 10:18-19; 11:1, 3; 12:22, 17-20; 13:5; 14:25; 16:11; 19:)

아티클 / 성경 주석

   용감한 여인으로 의인화된 지혜의 첫 번째 특징은 신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잠 31:11). 신뢰는 지혜와 덕의 기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서로 조화를 이루며 일하라 하셨는데(창 2:15), 이는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신뢰를 얻으려면 신실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윤리적 원칙을 지켜야 한다. 잠언에서 묘사한 신뢰성은 오늘날의 직장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수탁자의 책임에 충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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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뢰성의 첫 번째 요건은 우리를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일이 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용감한 여인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도 일했다. 그녀의 일은 그녀의 고객(잠 31:14), 공동체(잠 31:20), 직계가족(잠 31:12, 28), 동료 일꾼들(잠 31:15)에게 유익이 되었다. 고대 근동의 경제에서 이런 책임 분야는 모두 ‘가족’이라 불리는 경제적 실체의 범주에 들어 있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세계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살았던 것과 동일한 처지에서 일을 한다.

 

   어떤 식구들은 요리사, 청소부, 간호사로 또는 실내에서 직물이나 금속이나 나무나 돌을 다루는 장인으로 일한다. 다른 사람들은 들이나 실외에서 농부, 목동 또는 노동자로서 일한다. ‘가족’은 생산적 기업의 전 분야뿐 아니라 대가족, 고용된 일꾼, 그리고 아마 노예들까지도 포괄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한 가족의 관리자인 이 용감한 여인은 현대적 기업가나 사장과 흡사한 사람이다. “집안일을 보살피고”(잠 31:27) 있을 때, 그녀는 자신의 기업에 의존하는 모든 사람들의 신뢰에 합당하게 맡은 바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용감한 여인은 가족을 위해 의무를 다하고, 가족은 그녀를 위해 의무를 다한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이익 중에서 그녀의 몫을 받으며, 이는 정당하다. 이 단락에서는 그녀의 아이들, 남편, 그리고 공동체 전체에게 그녀를 귀하게 여기고 칭찬하라고 장려한다.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잠 31:28, 31).

 

   신의성실의무(Fiduciary Duty)는 우리가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려고 고용주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요구한다.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고용주에게 투쟁할 수는 있지만, 그들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고용주의 것을 도적질하거나(잠 29:24) 파괴하거나(잠 18:9) 또는 비방하는 방법으로 불만을 토로해서는 안 된다(잠 10:18). 일하지 않은 시간에 임금을 청구하지 않아야 한다. 고용주의 재산을 파괴하거나 또는 그들을 거짓으로 고소해서도 안 된다.

 

   이런 원칙을 깊이 생각하다 보면 더 깊은 의미 있는 질문을 만난다. 내부 경쟁자를 돕지 않아 조직의 생산성이나 조화를 깨뜨리는 것이 합당한가? 여행, 상금, 무료 상품 등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느라 고용주의 이익을 희생시키지는 않는가? 직원과 고용주가 서로에게 막중한 의무를 지고 있다.

 

   이 상호간의 의무는 신탁의무의 관계를 맺고 있는 기관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어떤 회사가 더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 고객과 더불어 협상하는 것은 합법적이다. 그러나 고객을 비밀리에 착취하여 이윤을 남기는 것은 불법이다. 곧 가치가 폭락할 것이 예상되는 CMO(주택담보 대출 증권의 일종)를 고객들에게 견실한 투자로 권장하면서 팔라고 직원들에게 명령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1]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은 수탁자 책무의 시금석이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 3:7).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싶은 유혹에 간혹 빠진다. 그것은 인류 타락의 결과물이다. 유혹이 찾아오는 순간 잠언의 가르침을 떠올리자. 다른 사람들을 해하고자 할 때는, 여호와를 향한 경외심 즉,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신 선, 모든 일을 다스리시는 그분의 섭리, 그분의 공의를 기억하자.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완수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Wall Street and the Financial Crisis: Majority and Minority Staff Report” (Washington DC: United States Senate, Permanent Subcommittee on Investigations). 다음 웹 주소에서 볼 수 있다. http://hsgac.senate.gov/public/_file...isisReport.pdf

정직하게 말하고 정직하게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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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직은 신뢰의 또 다른 필수 항목이다. 정직은 진리를 말하며 진리를 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잠언에서는 진리를 지혜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잠 23:23).

 

정직하게 말하기

   잠언 6장에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곱 가지 목록이 실려 있는데, 그중 두 가지가 부정직의 형태를 띤다. “거짓된 혀”와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잠 6:16-19). 진실 말하기의 중요성은 잠언서 전체에 걸쳐 강조하는 내용이다.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잠 8:6-7).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잠 14:25).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잠 21:6).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하는 자도 피하지 못하리라(잠 19:5).

너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잠 24:28).

미움을 감추는 자는 거짓된 입술을 가진 자요 중상하는 자는 미련한 자이니라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0:18-19).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이 있고 화평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잠 12:17-20).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잠 12:22).

자기의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화살이니라(잠 25:18).

원수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으로는 속임을 품나니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니라(잠 26:24-25).

 

   성경에서도 거짓과 사기와 관련해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다(여호수아 2장 1절에 나오는 기생 라합의 거짓말, 출애굽기 1장 15-20절에서 히브리 산파들이 바로에게 한 거짓말, 사무엘상 21장 1-3절에서 다윗이 제사장에게 한 거짓말). 하지만 잠언은 일상적인 삶과 일에서 거짓이나 사기를 일삼아서는 안 된다고 권고한다. 거짓은 그릇된 것이요, 반드시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거짓을 피해야 하는 것은 그것을 금하는 규칙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진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파괴적이며 궁극적으로는 형벌과 사망으로 우리를 이끈다.[1] 사기를 조심하고, 도처에 있는 사기꾼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의 거짓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거짓을 쉽게 믿는 경향이 있다. 주변에 흔히 널린 쉬운 잡담(종종, 진실로 포장된 거짓)처럼, 거짓은 우리가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 틈에 끼여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또는 더러 비뚤어진 심성을 가진 사람은 거짓을 믿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잠언은 우리에게 거짓말하는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강력하게 경고한다(“사랑 안에서” - 엡 4:15 참조). 진실만이 통용되는 직장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짓말하는 혀를 증오하는 사람들 중에 속하라고 명하신다.

 

   잠언 절반에 걸쳐 거짓 증인이 되지 말라고 하는데, 이것은 특히 아홉째 계명(출 20:16)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오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일이며,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잠 19:5). 거짓 증언은 죄 없는 사람을 직접 공격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그 같은 거짓말이 횡행한다. 두 번째는 허위 광고다. 허위 광고는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제품에 대한 정보가 없는 외부인(고객)을 상대로 이루어진다. 이에 반해 거짓 증언은 대개 동료에 대한 공격의 형태로 조직에서 의심 없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다른 사람의 역할과 행위를 잘못 전함으로써 책임이나 공을 바꾸려고 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 이런 행위는 개인뿐 아니라 전체 조직까지 해친다.

 

   어떻게 성공했는지, 왜 실패했는지 이유를 정확히 하는 것이 가장 먼저다. 그렇게 해야 조직을 향상시킬 수 있고, 나아가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정직에 관해 더 알고 싶다면, TOW 웹사이트 핵심 주제 코너에서 ‘진실과 거짓’ 부분을 보라.

 

 

정직하게 행동하기

   말뿐 아니라 행위도 진실하거나 거짓될 수 있다.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운 데에 이르느니라”(잠 13:5). 잠언에서 언급하는 가장 두드러진 형태의 부정직한 행위는 거짓된 저울과 척도를 사용하는 일이다. “공평한 저울과 접시 저울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저울추도 다 그가 지으신 것이니라”(잠 16:1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 11:1). “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니라”(잠 20:23).

 

   상품 판매 차원에서 봤을 때, 거짓된 저울과 척도는 상품을 구매하려는 고객을 속이는 행위다. 제품을 틀리게 소개하는 것, 품질 상태가 약속과 다른 것, 출처나 기원을 틀리게 말하는 것, 혹은 수량을 뻔히 속이는 것이 그 예다. 하나님은 이런 관행을 싫어하신다.

 

   정직하게 행하는 데에는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 부정직한 행위로 수입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고객이 눈치를 채고 거래처를 옮길 것이다. 사람을 부정직하게 대해도 무사하리라고 생각될 때에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이다. “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와 한결같지 않은 되는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잠 20:10).

 

   직장에서 부정직하게 처신하는 경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구약에 땅 소유권 이야기가 나오는데, 경계석을 두어서 소유권을 표시하곤 했다. 부정직한 사람은 남몰래 그 경계석을 옮겨서 이웃을 희생시키는 한편, 자신의 지분을 높이곤 했다. 잠언은 그런 부정직한 행위를 정죄한다.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그가 너를 대적하여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잠 23:10-11).

 

   잠언은 온갖 부정직한 행위들을 일일이 다 열거하지는 않는다. 대신 하나의 원칙을 제시한다. 부정직한 행위는 부정직한 말처럼 여호와께서 증오하신다는 것이다.

 

   말과 행위 모두에서 정직하다는 건 오늘날의 직장에서 무엇과 같은가? 정직이 신뢰받을 수 있는 사람이 지니는 품성의 한 부분이라면, 정직의 기준은 ‘그것이 기술적으로 참된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나의 언행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가 될 것이다. 꼭 노골적인 사기만이 신뢰를 뒤흔드는 것은 아니다. 가장 교묘한 변호사를 고용한 사람이 계약서를 변경하거나 무마시켜서 이익을 취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열량이 많이 들어 있을 뿐 아무것도 아닌 제품을 “에너지를 높여 준다”는 거짓된 표현을 써서 선전할 수 있다. 결국은 하나님이 사기당한 사람들을 변호하실 것이며 그런 습관을 용인하지 않으실 것이다(잠 23:11). 한편 지혜로운 즉, 경건한 일꾼은 그런 관습을 거부할 것이다.

 

   잠언은 반복적으로 정직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잠 11:3). “속이고 취한 음식물은 사람에게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의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잠 20:17).

 

   잠언은 또 다른 형태의 사기를 재미있게 표현한다. “물건을 사는 자가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잠 20:14). 가격을 깎아내리기 위해 상품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다가 나중에는 ‘잘 샀다’고 만족하는데, 이 또한 일종의 부정직한 행위다. 가격에 정통한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실랑이를 보면, 이런 관행은 이젠 악습을 넘어서 즐기는 차원이 된 듯하다. 영어 사용 유권자들에게는 이민법에 반대한다고 말하면서 스페인계 유권자들을 그 반대말로 구슬리려고 하는 정치인들의 경우처럼 현대판 정보 조작에서 보면 그런 관행은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면서 위장시킨다.

 

 

M. Scott Peck, People of  the Lie: The Hope  for Healing Human Evil, 2nd ed. (Touchstone, 1998)를 보라. 스캇 펙, 《거짓의 사람들》(비전과리더십 역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