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축복이 풍성함의 원천이다 (룻2:1-4)

아티클 / 성경 주석

   나오미와 룻은 견디기 힘든 역경에 처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라면 역경은 절망이 아니다. 룻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분명한 기적적인 개입을 만나게 되지는 않지만, 결코 하나님의 손길이 없던 게 아니었다. 하나님은 항상 역사하셨고, 특히 신실한 사람들을 통해 그렇게 하셨다.

 

   오래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창 17:6). 여호와는 자기 백성이 신실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농업 생산성을 회복해 주심으로써(룻 1:6) 그분이 약속하셨던 것을 선하게 이루셨다. 그 소식을 듣고 나서 나오미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룻은 자신이 한 말을 충실하게 지켜서 자신과 나오미의 생계를 위한 일자리 찾으리라 작정하고 시어머니와 같이 길을 나섰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하나님의 축복이 룻이 한 일과 그 일의 결과로 그들 위에 (결국은 온 인류 위에) 쏟아 부어진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모든 생산성의 기반이다.

 

   대체로 히브리 성경은 하나님을 일하시는 거룩하신 분, 사람의 일에 대한 패러다임을 제공하시는 분으로 그린다. 성경은 말씀하시고, 창조하시고, 조성하시고, 지으시는 모습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으로 시작한다. 히브리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은 ‘일하다’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 수많은 동사의 주어로 등장하실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하나님을 부를 때 종종 은유적으로 “일하시는 분”(Worker)이라고 부른다. 히브리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많은 일에 직접 관여하실 뿐만 아니라,[1] 또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패턴을 따라 일하라고 명령하신다(출 20:9-11).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직접 일하시고, 또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신다.

 

   룻기의 주요 등장인물은 반복적인 신앙 고백으로, 또 서로를 축복하는 것을 통해 자신이 일하는 토대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한다.[2] 이런 표현 가운데 어떤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하신 행동을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인자를 거두지 않으셨다(룻 1:20). 그분은 기업 무를 친족을 주셨다(룻 4:14). 다른 어떤 표현은 하나님의 축복이나(룻 2:4, 19 3:10) 임재나(룻 2:4) 인자를(룻 1:8) 바라는 청원이다. 세 번째 표현은 하나님 행동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간구다. 하나님이 위로(NIV에는 “rest”) 주시기를 바라고(룻 1:9), 룻을 라헬이나 레아와 같게 하시기를 바라는 것이다(룻 4:11-12). 룻기 2장 12절의 축복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 모든 축복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공급하시기 위해 일하신다는 확신을 표현한다.

 

   룻은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것이든(룻 2:12), ‘은혜를 입게 할’(룻 2:2) 사람을 통해서 오는 것이든 풍성함이라는 하나님의 복을 갈망했다. 모압 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룻은 자신이 하는 일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는 데 많은 이스라엘 사람보다 더 지혜로웠다.

 

   이야기에 나오는 사건을 볼 때 하나님에게서 온 가장 중요한 복 중 하나가 하나님께서 보아스의 추수가 넉넉하도록 축복해 주신 것이다(룻 2:3). 그가 반복적으로 한 여호와의 축복 간구에서 보이듯, 보아스는 자신이 하는 노동에서 하나님의 역할을 온전히 인식했다(룻 2:4 3:10). 

 

 

우리 일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명백하게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이 풍성케 하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시는 방법 중 하나는 모든 상황에 대한 그분의 통제력이다. 룻기 2장 3절에 나오는 “her chance chanced upon”(우연히 발견된 그녀의 기회)이라는 묘한 문장구조는 다분히 의도적이다(NRSV에서는 ‘공교롭게도, 마침’이라는 뜻으로 쓰여 있으며, 개역개정에는 “우연히”로 번역되어 있다 - 옮긴이 주). 구어체 영어로 말한다면 “As luck would have it”(운 좋게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진술은 역설적이다. 이야기의 화자(narrator)는 독자가 자리에 앉아서 도대체 어떻게 룻이 자애로울 뿐 아니라(룻 2:2) 기업 무를 친족(룻 2:1)인 사람의 밭에 “우연히” 가게 됐느냐고 묻게 만드는 것이다.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우리는 룻이 보아스의 밭에 이른 것이 하나님 섭리의 손길의 증거였음을 본다. 룻기 4장 1-2절에서 보아스가 성문에 앉아 있는데 마침 그다음 기업 무를 자가 나타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우리 힘으로만 성취할 수 있는 것 외에 더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면서 매일매일 출근한다면 그것처럼 삭막한 세상살이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한 일, 예상치 못한 기회, 창의성의 갑작스런 발현, 눈에 보이지 않는 복 같은 것들도 의지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오는 가장 안심되는 축복 중 하나는 바로 우리가 일하러 갈 때 그분도 우리와 함께 가시며 우리가 지는 짐을 함께 져 주신다는 그분의 약속이다. “나의 멍에를 메고 ……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9-30). 룻은 예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을 듣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날개 아래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찾으리라는 믿음으로 살았다(룻 2:12).

 

 

 

풍성한 인생은 우리가 하나님께 보인 신실함의 열매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나오미를 신실하게 대하는 룻의 모습에 투영되어 있다. 룻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1:16)라고 약속했다. 룻의 약속은 엘리멜렉 가문에 그저 식량만 축내는 수동적인 한 식구로 남아 있겠다는 간청이 아니라, 자기능력이 닿는 데까지 시어머니를 봉양하겠다는 헌신의 간청이었다. 그녀는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었는데도, 마치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십계명의 제5계명에 구체화되어 있던 이스라엘 율법에 따라 살아가는 듯 보인다. 룻과 그녀의 가족을 위해 풍성하게 일이 회복되는 복이 임한 것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신실하게 일한 룻의 헌신에서 시작됐다. 

 

 

 

하나님은 창조하시고(창 1:1), 세우시고(삼하 7:27; 삼상 2:35), 만드시고(창 2:4), 지으시고(창 2:7, 8), 
조성하신다 (시 8:6). 그분은 창조주로(창 1-2; 욥 10:3-12; 시 139:13-16), 짓는 자, 건축가(잠 8:27-31), 음악가, 작곡가(신 31:19), 금속 공예가(사 1:24-26), 재단사(욥 29:14), 토기장이(사 64:8), 농부(호 10:11), 목자(시 23편; 겔 34장), 장막업자, 천막업자(욥 9:8; 사 40:22), 성전 설계사 겸 건축가(출 25장; 35장; 대상 28:11-19), 서기관, 작가(출 24:12; 31:18; 34:28 등)로 묘사되어 있다.

룻 1:8-9; 2:4a; 2:4b; 2:12; 2:20; 3:10; 4:11-12; 4:14a; 4:14b-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