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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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인간이 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목적에서 그 의미를 찾는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기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직업은 다른 관점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과 세상 속에서 우리의 지위와 직업을 보는 방식, 그리고 우리가 일을 통해 얻으려는 가치들, 이 모든 것을 형성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은 누구신가, 그리고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는가에 관한 인식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할 핵심 사항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지금도 일하고 계시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우리는 그분의 끊임없는 사역을 위해 함께 일하는 동반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인식이다. 우리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고,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고자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숙지해야 우리의 직업 윤리관 속에 다른 관점들과 구별되는 기독교적 관점을 적용할 수 있다. 우선 보편적인 시각으로 윤리를 살펴보도록 하자.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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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리”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에토스(ethos)”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일반적으로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습관이나 관습이고 다른 하나는 법령 또는 법률이다. 신약에서의 “윤리”는 이 두 가지 차원의 의미를 전부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25:16에서는 주로 "법"이라고 번역되며 ["내주는 것은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고린도전서 15:33에서는 "행실"이라고 번역된다.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윤리와 도덕이라는 이 두 단어는 흔히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윤리는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거나 영향을 주는 도덕적 원칙들에 관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데니스 홀링거(Dennis Hollinger)는 윤리란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의 기준에 대한 체계적인 학문으로, 이러한 기준들을 삶의 현실 속에서 적용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라고 말했다.[1]

 

   기독교적 윤리에 따라 사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공유하는 근본적인 믿음의 약속에 따라 삶의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의 걸음을 이끌어 나가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2] 혹은 다른 정의에 따르면, "기독교적 윤리는 성경에서 보이는 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며, 성령님에게 응답하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는 결과를 내는 의사결정의 틀과 방법을 제공하려는 시도이다."[3]

 

 

Dennis P. Hollinger, Choosing the Good: Christian Ethics in a Complex World (Grand Rapids: Baker, 2002) 14쪽.

Stanley J. Grenz, The Moral Quest (London: Apollos, 1997) 19쪽.

Alistair Mackenzie and Wayne Kirkland, Just Decisions (New Zealand: NavPress NZ, 2008).

윤리에 대한 다른 접근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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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우리는 기독교적 윤리에 대한 우리의 접근법을 윤리와 도덕적 사고에 대한 다른 일반적 접근법들을 이해하는 데 적용시켜야 한다.[1] 일반적으로 세 가지 다른 접근법을 찾아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명령, 결과, 그리고 인격이다.[2]

 

 

명령 접근법

 

   명령 접근법은 "이 행동 자체가 규칙을 준수하는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접근법이다. 이는 흔히 의무론적 접근법(deontological approach)이라고도 불린다. 의무 또는 규칙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deon'에서 유래한 이름이다.[3] 이는 일련의 규칙이나 의무사항에 따라 어떠한 행동이 본질적으로 옳거나 그르다고 보는 명제를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일련의 의무사항이나 규칙은 하나님의 명령, 자연법, 이성적인 논리 혹은 다른 것에서 비롯될 수 있다. 기독교적 윤리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 혹은 성경에서 논리적으로 유추해낼 수 있는 명령에 초점을 맞춘다.

 

 

결과 접근법

 

   결과 접근법은 "이 행동이 좋은 (혹은 나쁜) 결과를 초래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접근법이다. 이는 종종 목적론적 접근법(teleological approach)라고도 불리는데(끝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telos'에서 유래[4]) 그 이유는 최종 결과를 통해 어떠한 행동 방법이 도덕적으로 옳은지 알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가장 도덕적인 행동 방법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통해 결정될 수 있다.

  • 어떤 행동이 가장 최고의 선으로 이어질까? 공리주의[5]는 목적론적 접근법의 대표적인 예로서, 최대 다수에게 최고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최고의 선이라고 정의한다.
  • 어떠한 행동이 개인의 이익을 가장 극대화시킬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윤리학적 이기주의[6]라고 불리는 체계는 각 개인이 일정 한도 내에서 자신의 최고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최고 이익을 달성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가정한다.
  • 창조계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에 가장 적합한 결과를 내는 것은 무엇인가? 이 접근법은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과 같은 부수적인 목표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궁극적인 목표에도 초점을 맞춘다. 상황이 복잡한 경우를 만났을 때, 이 접근법은 어떠한 행동이 악을 이기고 선의 균형을 최대화할 수 있는지 추정하고자 한다.

 

   행복이나 개인의 이익 모두 하나님께서 당신의 창조물에게 바라는 최고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공리주의나 윤리학적 이기주의 모두 기독교적 형태의 윤리로 간주되지 않는다. 하지만 비성경적인 규칙 체계가 있다고 해서 윤리적 명령이 하나님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닌 것처럼, 그러한 결과들도 윤리적인 면에 있어서 하나님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인격 접근법

 

   이 접근법은 "선한 동기를 지닌 행위자는 선한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접근법에 따르면, 도덕적 행위 과정은 대체로 인격과 동기에 대한 질문에 따라 결정될 뿐만 아니라, 개개인은 그들의 인격과 태도와 행위를 형성하는 공동체에 속해 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질문으로 결정된다. 이는 흔히 미덕 윤리라고 불리기도 한다.[7] 기독교 시대가 시작된 이후로 미덕은 기독교적 윤리의 필수적인 요소로 여겨졌다. 하지만 20세기 말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후, 미덕 윤리는 결과적 윤리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개신교 윤리 사상에서 명령적 윤리에 가려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다룬 세 가지 접근법을 기독교적 윤리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This section borrows elements from Scott B. Rae, Moral Choices: An Introduction To Ethics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5) 13-96, and Dennis P. Hollinger, Choosing the Good (Grand Rapids: Baker, 2002) 27-60쪽.

대부분의 윤리학 글들은 의무론, 목적론, 그리고 장점 윤리를 뚜렷이 바른 접근법으로 분류하고 있다. 일부는 맥락적 고려를 별개의 범주로 포함시킨다.

Patrick Hanks, Collins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  (London: Collins, 1979) 397쪽. 또한 Wikipedia에서  http://en.wikipedia.org/wiki/Deontological_ethics를 보라.

Patrick Hanks, Collins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 (London: Collins, 1979) 1493쪽. 또한  Wikipedia에서 http://en.wikipedia.org/wiki/Teleological_ethics와  결과주의(consequentialism.)링크를 보라.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면, Wikipedia에서 공리주의(Utilitarianism)에 대한 글(http://en.wikipedia.org/wiki/Utilitarianism.)을 보라.

Wikipedia에서 http://en.wikipedia.org/wiki/Ethical_Egoism.를 보라.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면, Wikipedia에서 장점 윤리(Virtue Ethics)에 대한 글(http://en.wikipedia.org/wiki/Virtue_ethics.)을 보라.

하나님의 규칙은 무엇인가? 하나하나의 상황마다 거기에 맞는 명령이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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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전통을 따르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명령과 원칙을 이해하는 데 성경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그리고 성경에서 일에 관한 구절을 찾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다.

  • 성경의 첫 장과 두 번째 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에게 자연 자원을 보살피고 경작하라는 일을 주신다(창1:26-29, 2:15, 2:18-20).
  •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에 안식일을 가짐으로써 7일을 기준으로 하는 일의 전형을 보여주셨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에 따라 일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창2:2, 출20:9-11, 마2:27). 또한 일상적인 일과 휴식에 관한 규칙도 정해져 있다(시104:19-23).
  • 정직하게 일해서 생계를 유지하라고 명령받았다(시128:2, 살전2:9, 살후3:7-10).
  • 잠언에서는 열심히 일하라는 권고의 말씀과 나태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잠6:6 등).
  • 육체노동 또한 괄시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왕도 자신의 손으로 일했다(삼상11:5). 예수님께서도 수공업에 종사하셨다(막6:3).
  • 예언자들은 게으른 부자들을 비난한다(암6:3-6 등).
  • 예수님께서도 이전의 선지자들처럼(사5:7-8, 미3:1-3; 암5:21-24),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는 이들을 꾸짖으신다(마23:23).
  • 사도 바울은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장막을 만드는 일을 했으며, 성실하고 자립적인 모습을 통해 자신을 따르는 개종자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었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라고 이들에게 권했다(엡4:28). 바울은 정직한 노동이 복음을 전파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보았다(살전4:11). 그래서 일상적인 일을 제쳐둔 채 보다 더 시급하다고 여기는 복음사역에 무작정 뛰어들어 결국 남에게 의존해서 사는 열성주의자들을 바울은 질책했다(살후3:10 이하).
  • 우리는 노동을 하나의 예배 행위로서 접근해야 한다(고전10:31, 골3:17, 23).

 

또 성경에서는 직장 문제에 대해 염려하는 구절도 찾을 수 있다.

  • 우리는 그저 상사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골3:23, 엡6:5-8). 또한 우리는 전심을 다해 일을 대하고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전9:10, 골3:22-24).
  •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에 따른 정당한 보수를 받고, 그러한 일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의식주를 누리길 원하신다(눅10:7, 살후3:10, 시128:1-2).
  • 고용주들은 자신도 궁극적으로 섬겨야 하는 주인이 계심을 인정하고, 자신이 고용한 사람들을 공정하고 공평하게 대하도록 명령받았다(골4:1).
  • 이들은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항상 인식해야 한다(눅10:7, 딤전5:18).
  • 고용인도 자신의 고용주에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딤전6:1; 딛2:9).

 

   이러한 명령들뿐만 아니라, 직장에서의 관계나 성실함을 다루는 성경 말씀은 아주 많다. <비즈니스맨을 위한 주제 성경(The Businessman’s Topical Bible)[1]과 그 자매편인 <비즈니스우먼을 위한 주제성경(The Businesswoman’s Topical Bible)[2]은 직장에서 흔히 겪는 100가지 문제를 열거한 뒤, 그에 따른 해답을 제시해주는 1,550개의 성경 말씀을 인용한다. 그 책이 다루는 주제로는 고객이 불평할 때, 회사의 핵심적인 직원이 퇴사했을 때, 배신당한 기분이 들 때,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싶은 유혹이 생길 때, 그리고 직원들의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 등등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윤리적 딜레마를 성경에 입각해 한 권의 규칙서로 만들어내는 것은 가망이 없어 보인다. 그 어떠한 일련의 명령이라도 직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을 다루진 않는다. 그리고성경이 쓰여진 시대에서는 전례가 없었던 직장 문제들이 오늘날에는 존재하기도 한다. 성과에 따라 스톡옵션을 나눠주는 것은 윤리적인 일인가?사람들이 더 많이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상품 광고는 윤리적인 것인가?직원 고용에 있어서 소수민족을 선호하는 것은윤리적인 일인가? 경쟁사를 인수하는 것은 윤리적인 일인가?위의 상황들은 그 어떠한 성경적인 명령들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게다가 이것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포괄적인 규정을 만들어내려고 했을 때 맞닥뜨렸던 문제로, 이들은 사소한 문제에 얽매여 결국 중요한 내용까지 놓치게 되었다. 그렇지만 성경이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한다는 사실까지 무시해버리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닐 것이다. 성경은 도둑질, 거짓말, 원수를 포함한 이웃들을 사랑하는 것, 옳은 일을 행하는 것,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보살피는 것 등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크리스 마셜(Chris Marshall)은, "성경적 명령, 법 또는 원칙의 규범적 권한을 배제하는 것은 기독교적 윤리에 따라 구별되는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위태롭게 할 수 있으며, 너무 많은 주관적 판단의 여지를 주는 격이다."[3]라고 말했다. 성경은 오늘날의 직장에서 윤리를 위한 종합 규정집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의미하고 중요한 규칙들을 다루고 있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Mike Murdock, The Businessman’s Topical Bible (Tulsa: Honor Books 1992).

Mike Murdock, The Businesswoman’s Topical Bible (Tulsa: Honor Books, 1994).

Christopher Marshall, "The Use of the Bible in Ethics" in Voices for Justice, edited by Jonathon Boston and Alan Cameron (Palmerston North, N.Z.: Dunmore Press, 1994) 125쪽.

지도 방침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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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성경 속의 수많은 명령들을 몇 가지 포괄적인 명령이나 원칙으로 압축시키고자 하는 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이에 대한 몇 가지 예시는 모세의 십계명[1]이나 예수님의 팔복에 대한 가르침[2], 혹은 잠언의 인용 문구들[3]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보여준다.

 

   <비즈니스맨과 비즈니스우먼을 위한 성경원리에 입각한 완벽 지침서>[4]라는 화려한 부제가 붙은 래리 버켓(Larry Burkett)의 <성경속의 경영학(Business by the Book)>은 다음과 같이 경영과 관련된 성경적인 최소 기본 원리 6가지를 이야기한다.

  • 경영 실무를 할 때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라.
  •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라.
  • 적당한 가격에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하라.
  • 채권자들을 존중하라.
  • 직원들을 공정하게 대우하라.
  • 고객들을 공정하게 대우하라.

 

이밖에도 이와 비슷한 시도는 무수히 이루어졌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은 다수의 유용한 통찰력을 내포하고 있지만, 때로는 우리가 사물의 핵심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성경적 통찰력의 범위에서 벗어나 결국 작위적인 규정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신앙의 눈으로 본 경영(Business Through the Eyes of Faith)>[5]은 좀 더 근본적인 성경적 원칙을 기반으로 하는 책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최우선의 윤리적 문제로 삼는다. 그리고 미가 6:8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비즈니스 분야에 사랑을 어떻게 적용하길 원하실지 판단할 수 있는 원칙을 도출한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6] 따라서, 정의와 선함, 그리고 신실함을 통해 적용되는 사랑은 윤리적 원칙의 기초가 된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3:23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계신다. 이는 기독교적 윤리의 핵심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개인적 윤리와 사회적 윤리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를 초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문제마다 특정한 명령을 구하는 것보다 몇 가지 근본적인 명령을 따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된다면, 그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다른 모든 명령들이 토대로 삼고 있는 단 하나의 성경적인 명령이 있는가?"

 

일반적으로 출20:1-17 또는 신5:6-21의 축약된 버전. 예를 들면, 십계명의 몇가지 제적인 함축의 유용한 요약에 대해  Max L. Stackhouse, “The Ten Commandments: Economic Implications” in On Moral Business, edited by Max L. Stackhouse, Dennis P. McCann and Shirley Roels (Grand Rapids: Eerdmans, 1995) 59-62쪽과 David Gill, Doing Right (Downers Grove: IVP, 2004)를 보라.

David Gill, Becoming Good (Downers Grove: IVP, 2000).

Michael Zigarelli, Management by Proverbs (Chicago: Moody Press, 1999) and also Clinton W. McLemore, Street Smart Ethics (Louisville/London: WJKP, 2003).

Larry Burkett, Business by the Book (Nashville: Thomas Nelson, 1990).

Richard C. Chewning, John W. Eby and Shirley J. Roels, Business Through the Eyes of Faith (London: Apollos, 1992).

Ibid, 26.

지침이 되는 여러 원칙에서 단 하나의 명료한 명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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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의 도덕적 명령들을 모아서 이를 전부 포함하는 단 하나의 명령으로 요약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존 맥스웰(John Maxwell)은 다음 구절을 황금률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이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접받고 싶은가?"[1] 맥스웰은 이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 다른 원칙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 다른 이들이 여러분을 대해주는 것보다 더 잘 대해주어라.
  • 또 누군가 여러분에게 억지로 5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10리를 동행하라(마5:41 참고).
  • 여러분을 도울 수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라.
  • 옳지 않은 일을 행하는 것이 자연스럽더라도 옳은 일을 행하라.
  • 약속을 지키는 것이 손해라고 해도 약속을 지켜라.

 

   안타깝게도, 이것은 본질적인 율법의 수를 줄인다기보다 오히려 늘리고 있다. 또한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인용되지 않은 원칙들도 소개하고 있다.

 

   조셉 플레처(Joseph Fletcher)는 자신의 저서 <상황윤리(Situation Ethics)>[2]에서 모든 것을 예수님의 "사랑하라는 명령"에 적용시켰다.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2:39) 그 후 플레처 역시 비슷한 문제에 맞닥뜨렸고, 다른 여러 가지 원칙을 만들어내야만 했으며 (4개의 전제와 6개의 제안) 사랑해야 하는 상황을 대체로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지 명료하게 밝혀야 했다. 맥스웰은 스스로 <상황윤리>의 "도덕적 상대주의"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애쓰면서 플레처와 다르게 사랑하라는 율법을 절대적인 도덕적 원칙으로 보지 않았다. 다시 말해, 다른 모든 도덕적 규칙들을 그저 단순한 "조명 장치" 정도로 만들어버리는 절대적 원칙으로 이 율법을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맥스웰과 플레처의 경우에서 모두 볼 수 있듯이, 단 하나의 원칙을 격상시켜 선택하는 단순함이 어떤 점에서는 매력적이고 유용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너무 지나치게 단순하고 현혹적일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윤리학을 논하는 데 단 하나의 접근법만을 사용하는 미흡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들의 경우에 명령 접근법만을 사용하고 있다. 두 경우 모두 하나의 절대적인 성경 명령을 격상시키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 절대적 명령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 다른 적절한 명령들이 필요한지 알아보고자 여러 가지 상황과 결과를 고려하게 된다. 또한, 이들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사랑에 대한 실천은 행위자의 인격에 따라 대부분 결정될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John C. Maxwell, There’s No Such Thing as “Business” Ethics (USA: Warner Books, 2003).

Joseph Fletcher, Situation Ethics (London: SCM, 1966).

세 가지 균형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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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더 힐(Alexander Hill)은 "경영에 있어서 기독교적 윤리에 토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성품"이라고 했다.[1] 인간이 따라야 하는 명령이나 원칙은 하나님의 성품에 따라 정의된다는 것. 차후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힐이 비록 하나님의 성품을 근거로 시작하긴 하지만, 그가 사용하는 방법은 성품을 근거로 한 윤리의 형태로 여겨지진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는 인간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에 있어서 힐이 규칙과 원칙을 정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칙과 원칙은 윤리학의 명령 접근법이 갖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해 가장 많이 반복되는 묘사는 신성함, 정의로움, 그리고 사랑이다. 따라서 우리의 법과 규칙, 그리고 관행은 신성함, 정의로움, 그리고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 힐은 기독교적 윤리에 있어서 이 세 가지 원칙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치 다리가 셋 달린 의자처럼, 이 세 가지 원칙은 각각 나머지 두 개의 원칙의 균형을 맞춰준다. 다른 두 개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어떤 하나의 중요성만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은 항상 윤리적 사고의 왜곡으로 이어지기 쉽다. 예를 들어, 신성함에만 치중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부터 멀어져야 하는 규칙을 요구하게 되어 결국 일종의 무력한 고립주의로 쉽게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정의로움만 중시하면 규칙을 위반하는 것의 대가로 과도하게 심한 형벌을 가하게 될 수 있다. 또 사랑에만 치중하는 것은 막연함과 책임감의 부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힐의 접근법은 단 하나의 원칙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더 균형 잡힌 접근법처럼 보인다. 그의 접근법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윤리의 차원까지 살펴보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사랑과 정의로움, 그리고 신성함의 개념들 또한 다른 원칙들을 통해 설명되어야 한다. 따라서 방대한 양의 규칙들을 몇 개의 주요 원칙들로 요약하고자 하는 바람은 다시 한 번 미제로 남게 된다. 

 

 

Alexander Hill, Just Business: Christian Ethics for the Marketplace (Downers Grove: IVP, 1997).

결과 접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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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주의자가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인가?" 혹은 "어떠한 선택이 가장 최선의 결과를 낳을 것인가?"이다. 명령 접근법(행동에 내재된 선함을 보여주는 규칙들로 인해 최선의 선택이 결정되는 접근법)과는 달리 결과 접근법은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 가장 도덕적인 행위의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최종 결과인 것이다. 이는 행위의 다양한 방법에 따른 결과를 예상 및 산출해보고, 매우 긍정적이거나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인 결과를 내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성경과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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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리를 십계명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성경을 하나의 규정집으로 여기는 많은 이들은, 실제로 성경 말씀이 얼마나 자주 독자들에게 자신의 행동에 따른 결과를 살펴보고 그러한 결과가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라고 권하는지 알게 되면 적잖이 놀랄 것이다.

 

   예를 들어, 잠언은 특정 행위가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결과를 자세히 설명하는 함축적인 격언들, 즉 이러한 경고와 약속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예로, 잠언 14:14은, "마음이 굽은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가득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도 청중을 향하여 그들이 내리는 결정에 따른 결과를 신중히 따져보라고 경고하신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마7:16).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예수님의 일생과 사역은 공공의 선을 위한 결정의 살아있는 예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팔복의 가르침 또한 결과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만약 "배부르고" 싶다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마5:6). 그리고 산상설교의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과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마5:25)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3-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5)

 

   결과를 고려하는 것은 우리의 윤리적 의사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성경적 접근법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고를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하는 일에는 숨겨져 있는 지뢰들이 매우 많다. "무엇이 좋은 것인가?" "누구에게 좋은 것인가?" "좋은 결과가 항상 수단을 정당화하는가?" "맥락에 따라 좋은 것이 달라지는가?"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인격 접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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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정 상황마다 매번 "규칙이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 최선의 결과를 낳을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대신,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라고 자꾸 묻는 것이 바로 미덕 접근법이다. 이 접근법은 만약 어떤 사람이 선한 성품을 발달시키면, 일생동안 여러 상황들 속에서 옳거나 선한 일을 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접근법은 행위보다는 변화의 윤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누군가 결과적 또는 명령적 윤리를 적용하여 무엇이 옳은 일인지 깨닫는다고 해서 반드시 그 옳은 일을 행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주장한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은 인격에 달려 있다. 인격 윤리는 옳은 일을 식별하는 능력과 함께 옳은 일을 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에 따라 우리의 인격이 어떻게 빚어지는 지에 대한 것이다. 성경에서 가장 확연히 드러나는 세 가지 인격의 특징을 빌려 말하자면, 우리가 더욱 신성하고, 정의로우며,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어가느냐, 아니냐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의사결정에 있어서 우리를 이끌어주는 그저 단순한 원칙들이 아니다. 우리의 내면에서 기본설정으로 점점 자리매김하고 있는 인격적 특징들이다. 이 문제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에 대해 다음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로,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지금까지 우리는 판단을 통해 복잡한 문제들을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는 시간과 능력을 지닌 존재들로 스스로를 간주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렇게 해결할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어떤가? 우리가 내리는 대부분의 결정들은 아주 짧은 순간에 황급히 내려지지 않는가? 우리는 이 사람과 어떻게 공감하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며, 고객에게 어떠한 상담을 해주고, 어떻게 실적이 좋지 않은 개인 또는 팀에게 동기부여를 해주는가?

 

   둘째로, 우리가 내리는 윤리적 결정들은 대부분 우리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미 거의 결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무엇을 하기로 결정내리는 것의 대부분은 우리의 인격에 따라 자동적으로 정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가 내리는 윤리적 결정은 우리가 어떠한 의사결정 과정을 택하는지에 따라 결정되기 보다는, 우리가 누구인지(인격의 유형이나 몸에 밴 가치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세 번째로, 우리는 개인적인 결정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내리는 개인인가? 아니면 우리가 내리는 결정들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것일까? 인격과 공동체가 우리의 가치관과 함께 얽히고설켜서 윤리를 언급할 때 개별적으로 분리하지 못할 정도인 것은 아닌가?

 

   데이비드 쿡(David Cook)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도덕적 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1]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생각 없이 그저 반응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리고 우리의 반응이 거의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하나님을 닮은 성품을 기르는 일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저 자동적으로 굉장히 많은 윤리적 결정들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들은 선한 결정을 내릴 확률이 더 높다.

 

David Cook, The Moral Maze: A Way of Exploring Christian Ethics (London: SPCK, 1983) 78쪽.

미덕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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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령 접근법과 결과 접근법이 어떤 명령이나 결과가 참으로 선한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것처럼, 인격 접근법 또한 어떠한 미덕이 선한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고대 그리스의 덕목인 정의, 용기, 절제, 그리고 자제를 강조했다. 성 암브로시우스(St. Ambrose, 339-397년)는 이러한 덕목들이 성경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특히 "신학적인” 또 다른 세 가지 덕목들을 성경에서 인용해 추가한다. 바로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이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이러한 덕목들에 상응하는 반대 죄악들을 언급했는데 바로 우리가 7대 죄악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이다.

 

   가톨릭 사상은 계속해서 미덕 윤리를 중시해왔으나 개신교 신학자들은 최근에야 인격 접근법을 열성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성경을 미덕의 근원으로 보아왔다. 앞에서 언급했던 대로 알렉산더 힐은 성경적 덕목인 신성함, 정의로움, 그리고 사랑을 하나님의 주요 덕목으로 보았다. 하지만, 힐마저도 미덕 접근법을 규칙 접근법의 하위개념으로 보았다. 그는 인간이 자기 내면에 있는 덕목을 개발시켜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인간은 하나님의 덕목에 따라 규칙을 확립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개신교 신학자들은 인간이 개발해나가야 하는 기독교적 덕목을 발견하고자 애써왔으나,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특히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스타센(Stassen)과 거쉬(Gushee)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은 평평하지 않다. 예수님께서 성경의 절정이자 중심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 어떠한 도덕적 문제도 그 문제를 살펴보는 데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생각해보지 않고 해결되어서는 안 된다.[1]

 

   스타센과 거쉬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마땅히 갈망해야 하는 구체적인 덕목들을 살펴보는 일의 확실한 출발점이 바로 산상설교, 특히 팔복의 가르침이라고 본다. 마음이 가난한 것, 자비,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것, 온유함,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 슬퍼하는 것 등은 우리가 길러야 하는 주요 성품들 중의 일부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행동과 행위가 이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핵심적 태도, 동기, 그리고 인격 특성을 보여주는 거라고 말씀하신다(막7:21-22). 사도 바울 또한 인격 발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예수님께 속한 자들에게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말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절제인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권고하고 있다(갈5:16-25). 빌립보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3-5)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본보기이시다. 또한 우리는 그분을 그대로 본받고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러한 말들은 신약성경이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야 한다는 점을 매우 크게 강조한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Glen H. Stassen and David P. Gushee, Kingdom Ethics: Following Jesus in Contemporary Context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3) 97쪽.

진짜 예수님, 좀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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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한다(요일3:2).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계명과 소망하는 결과, 그리고 인격을 우리의 생활방식과 세계관과 너무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스스로 "재구성"할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예수님을 우리 모습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유혹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부유한 공동체에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의 어마어마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환경적인 의미를 무의식적으로 걸러내기 쉽다. 그래서 결국은 범위가 좁은 "개인적"인 도덕 문제들만 해결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들에게 남는 것이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이 보잘것없게 여겨지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규칙적으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비기독교인들과 구별되는 윤리적 이해를 실제로 실천하는 경우는 단지 성적 행위, 개인적인 정직함, 그리고 부의 축적과 관련된 소수의 문제들인 경우라고 한다.[1] 다른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예수님의 윤리보다는 우리의 문화가 중시하는 가치에 따라 우리의 모습이 정해진다.

 

   이 연구 결과의 긍정적인 점은 교회를 다니는 것이 윤리적 이해에 있어서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굉장히 제한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 이유는 교회에서 꾸준히 다루는 윤리적 문제들이 대부분의 직장 혹은 사업과 관련된 윤리 문제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엔론(Enron)이나 월드컴(WorldCom)과 같은 기업의 CEO들은 자신들이 다니는 교회의 지원을 받으면서 자신들을 독실한 그리스도인이라 칭할 수 있었다. 그런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맹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이야기를 알리고, 기념하며, 탐색하는 방식으로 더 많은 일터의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도록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성품은 그저 개인의 변화의 결과를 통해 발달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러한 성품이 처음부터 양육되어지는 공동체의 맥락에서만 가능하다. 벤저민 팔리(Benjamin Farley)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약 성경은 히브리서 성경과 함께 믿는 공동체의 불가분한 상황을 강조한다... 이러한 믿음, 소망, 사랑이 양육되는 상황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하나의 과정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생경하고 적대적인 문화에 맞서는 것은 결코 개인이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결코 개인이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행동의 진원지가 될 수 없다.[2]

 

   우리가 복음의 이야기를 다시 전하고, 이해하며, 받아들이고, 실천하고자 하는 공동체에 속해있을 때, 비로소 미덕을 갖춘 사람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특히 공동체 자체가 예수님의 성품을 좀 더 명확히 알아내고자 노력하고, 도덕적인 삶에 대한 우리의 제한적인 시각에 도전하는 어렵고 불편한 질문들을 던진다면, 그러한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비기독교적인 방법으로 사업을 하는 안타까운 여러 사례들을 반복하게 될 확률이 줄어든다.

 

이것은 Robin Gill의 저서 Churchgoing and Christian Ethic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의 결론이며,  Alistair Mackenzie, “Evangelicals and Business Ethics: The Church” in Stimulus, Vol. 14, No.1 (February 2006) 2-9쪽에 의하면 New Zealand Values Surveys와의 비교를 통해서도 지지되고 있다.

Benjamin Farley, In Praise of Virtue (Grand Rapids: Eerdmans, 1995) 100쪽.

전체적인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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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명령, 결과, 그리고 인격까지 다 살펴보았다. 윤리의 세 가지 다른 접근법이었다. 실제로 현실의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이러한 접근법들이 결합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특정한 명령이나 규칙을 적용하고자 할 때 그러한 행동의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서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상되는 여러 결과들 중에서 선택을 내릴 때 어떤 것이 최선인지 알아보는 일은 우리가 어떠한 원칙을 최우선으로 삼고 싶은지 인지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론에 따라 어떻게 결정되었든 간에, 결국 어떠한 행동을 하도록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성품이다.

 

   따라서 도덕적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우리는 이러한 다른 접근법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일종의 윤리적 춤을 추는 것이다.

 

세 가지 접근법 요약

 

의무론 목적론 미덕
주요 개념   명령/규칙 결과/성과 인격
주요 질문 해당되는 규칙은 무엇인가? 어떠한 선택이 최선의 결과를 낳는가? 나는 선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우리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우리가 맞닥뜨리는 상황의 본질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이들 접근법의 가장 일반적인 차이점은 우리가 굉장히 중대한 도덕적 딜레마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것인지, 아니면 일상적인 도덕적 선택에 관한 것인지의 여부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중대한 도덕적 딜레마 해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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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 윤리 교육은 대부분 중요한 사례 연구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며, 심오한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반응을 통해 발전한다. 특히 중요한 원칙들이 충돌해 아예 다른 대안을 향하는 것처럼 보이는 위기 상황에 대응해 만들어진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는 위기에 맞서 도덕적인 사고 방법을 발달시키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곤 한다. 그러한 경우에는 주로 그 특정 맥락 속에서 어떠한 행동이 최선의 선택인지 구분해내기 위해 관련된 규칙들을 살피고 예상되는 결과들을 추정해 비교하고 측정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경우, 미덕과 인격에 강조를 둔 이유는 적절한 행동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우선적으로 충분한 동기와 결의를 확보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규칙/결과-우선(결정-행동) 모형

 

각 상황에서 어떤 것이

옳은지 판단하기 →

 

 

해당되는

규칙

정의하기

(명령)

 

 

최선의 결과 

식별하기

(결과)

 

상황마다 옳은 일을 행하면서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 가기 →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기

(인격)

 

권장되는 방법은 주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1]

  1. 관련된 모든 사실들을 수집하라.
  2. 주요 윤리적 문제들 명확하게 밝히라.
  3. 해당 상황과 관련된 규칙과 원칙을 찾아라.
  4. 상황의 해결을 위해 최선의 방법인 성경 읽기를 고려하면서 성경과 같은 지침이 되는 중요한 자료를 살피라. 이밖에도 다른 관련된 자료를 살펴보라.
  5. 여러분과 여러분이 처한 상황을 아는 공동체 내의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구하라. 이는 자기기만에 빠지는 것을 방지해주고 자신이 갖고 있는 편견에 치중하는 것을 막아준다.
  6. 행동의 대안 방법들을 모두 나열하라.
  7. 대안들을 원칙과 비교하라.
  8. 행동의 방법에 따라 각각 예상되는 결과를 추정해보고 결과를 살펴보라.
  9. 하나님 앞에서 기도로써 여러분의 결정을 살펴보라.
  10.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라.
  11. 조직/사회의 특성을 구분 짓는 체계와 관행을 만들어서 조직/사회가 여러분이 마땅히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라.
  12. 여러분이 옳다고 생각한 일을 행하는 것과 관련된 활동들을 계속해서 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이 접근법은 Richard Higginson, Called to Account (Guildford: Eagle, 1993) 224-240; David Cook, Moral Choices: A Way of Exploring Christian Ethics (London: SPCK,2000)와 Scott B. Rae, Moral Choices: An Introduction To Ethics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5)에서 차용되었으나, 다른 많은 글에서 또한 나타난다.

일상적인 도덕적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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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모형에서는 우리가 일상생활 및 직장에서 내리는 대부분의 윤리적 결정들이 종종 압력으로 인해 거의 사전에 숙고할 틈도 없이 순간적으로 내려진다는 점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일생 전반에 걸쳐 만들어진 습관의 결과물이며 우리가 일하는 장소와 동료 집단, 그리고 우리가 속한 믿음의 공동체의 문화에 따라 만들어진다. 또한, 이는 우리 존재의 핵심에 그리스도인의 덕목과 성품이 얼마나 자리 잡고 있는지 그 정도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이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제자도이다. 이는 우리 행위의 근간이 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이 도덕적 사고와 무관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인 삶 가운데서도 규칙을 이해하고 결과를 추정해야 하는 상황은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 규칙과 결과가 덕목에 종속되며 주인이 아닌 종으로 여겨진다. 이는 앞서 도표에서 살펴본 우선사항과 역행하는 것이다 

 

인격-우선(윤리적 발전) 모형

도덕적인 사람 되기 →  

규칙을 따르고 최선의 결과를 추구할 수 있는 지혜와 의연함을 갖출 수 있도록 도덕적인 성품을 함양하기

(성품)

      ↓                                                  ↓

상황이 불분명할 때 어떠한 것이 옳은 일인지 결정하기 

각 상황에 해당되는 규칙 정하기 (명령)

각 상황에서 비롯될 수 있는 최선의 결과 선별하기 (결과)

 

   이것은 덕목에 대한 강조가 도덕적 딜레마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대립되는 덕목들이 서로를 다른 방향으로 잡아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용기와 신중함은 서로를 반대 방향으로 당기고 있으며, 정의와 평화, 충성과 진실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한 상황에서 좋은 도덕적 결정을 내리는 것은 단 하나의 옳은 정답을 구하는 문제가 아니다. 옳은 정답이 단 하나만 존재하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좋은 도덕적 결정을 내리는 것은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의 응답을 위한 자극이 될 수 있는 긴장 요소로서, 다른 대안들을 인식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타락한 세상에서 윤리적 결정 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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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규칙을 따르고, 하나님이 구하시는 결과를 구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성품을 지닐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가정 하에 이야기를 계속해왔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권력이나 지위가 없을 수도 있다. 아니면 용기가 부족할 수도 있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 스스로의 신성하지 못한 욕망이나 태도, 두려움, 관계 등의 요소로 인해 실수를 할 수도 있다.

 

   때로는 능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올바르게 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부족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전쟁이나 생명 윤리와 같은 경우, 하나님의 원칙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기란 쉽지 않다. 만약 다른 대안이 매춘부가 되는 것이거나 자녀들을 굶기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결과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직장에서 능력 있지만 비열한 동료들과 일한다든지, 혹은 능력은 없지만 친절한 동료들과 일한다면 예수님의 성품이 어떠한 것인지 상상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대부분의 직장이나 삶의 상황들 속에서 우리는 간단히 완벽한 해결책에 도달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더 나은 것과 최선의 것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기독교적인 윤리 접근법은 우리가 완벽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서 실패했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원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해주거나 적어도 더 나은 결과를 얻도록 해준다. 부패한 제도 속에서는 진정한 차이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일이 어떠한 방식으로 되어가길 원하시는지를 잘 묘사해준다. 비록 우리가 짧은 시일 내에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이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희망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부패한 제도 가운데 예수님이라는 사람의 모습으로 인간의 삶에 들어오셨다. 그리고 그 결과로 최악의 상황들을 겪어야 하셨지만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를 거두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이와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7)

 

   결국 모든 것은 은혜로 귀결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 명확하게 알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가 옳은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을 행할 수 있게 된다. 만일 실패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는 용서 받으며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인격 접근법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는 세상이 타락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규칙에 따르지 못할 수도 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결과를 갈망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어제 했던 것보다 더 나은 것을 오늘 행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어제였더라면 거짓말했을 것을 오늘은 그저 단 한번이라도 진실을 말한다면, 우리의 인격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조금씩 바뀌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평생에 걸쳐 아주 조금씩 윤리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결국 큰 변화로 이어진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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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가 따라야 할 명령, 구해야 할 결과, 그리고 지녀야 할 성품을 보여주는 근본적인 자료다. 기독교적 윤리에 있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성경에 수록된 명령이라고 할지라도, 결과와 인격 또한 기독교적 윤리의 필수 요소이다. 대부분의 경우, 더욱 윤리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직장에서의 행동과 결정이 우리의 인격을 어떻게 만들어나가는지 더욱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다. 우리가 직장과 같은 곳에서 내리는 최선의 윤리적 결정들을 통해 우리의 성품은 예수님을 더 닮아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알게 될 것이다(요일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