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형제 교회
권준 담임목사
오늘 말씀을 시작하며 질문을 먼저 드리기 원합니다. 혹시 ‘월요일’이라는 말을 들으면 여러분 어떠신가요?
마치 주일 예배의 거룩함이 끝나자마자, “아... 또 월요일이네.” 이런 생각이 불쑥 올라올 때가 있지요. 마치 곧바로 고통스러운 형벌이 시작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필드라는 고양이가 나오는 만화책이 있습니다. 네컷짜리 만화인데요, 항상 고양이가 피곤하거나 일이 안 풀릴 때마다 “I hate Mondays”라고 루틴처럼 말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를 보아도 곧바로 확인됩니다 “Monday Blues”, “Monday Mood”, 한국말로는 “월요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주말을 지나 월요일에 일터로 향하는 걸 고통스럽게 느낍니다. 월요일을 상상하면 커피 한 잔 들고 출근길에 한숨을 쉬고, 사무실에서 영혼 없이 꾸벅 꾸벅 조는 직장인들도 보이고, “오늘 하루만 잘 버티자”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는 모습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장면입니다.
제가 몇 가지 월요병에 대한 재미있는 문구들을 찾아봤습니다. “주말이 지나고 나서 겪는 첫 5일이 가장 힘들다” 는 말, “내가 느끼는 요일별 느낌: 월요일 고통, 화요일 절망, 수요일 인내, 목요일 희망, 금요일 환희, 토요일 쾌락, 일요일 두려움”, “월요일은 수학 문제와 같다. 짜증을 더하고, 잠을 빼고, 문제를 곱하고, 행복을 나눈다 (분리한다).” 이것을 들으면 웃습니다. 왜요? 너무나 현실적이고 우리의 마음을 후벼 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저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일을 하나요?”
왜 우리는 일주일에 40시간, 50시간, 심지어 60시간을 보내면서 소진되고, 좌절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하는 이 고단한 일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요?
그저 먹고살기 위해서입니까? 가족을 위해서입니까?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입니까? 이 것 중 잘못된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맞아요.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그보다 훨씬 더 깊고 근원적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일이란 애초에 저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즉 “소명”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벌을 짓고 그에 대한 형벌과 저주로 일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일’의 시작을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말합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1장 2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그리고 28절에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 리라 하시니라” 즉,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서까지 우리에게 허락하신 창조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이 땅을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다스림이란 곧 책임이고, 경영이고, 일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읽지는 않았지만 창세기 2장 15절 (표준 새번역)에서는 무어라 말씀하십니까?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맡아서 돌보게 하신 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졌던 일인 것이죠. 그리고 이 것이 언제 시작되었을까요?
아직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입니다. 스트레스가 있기 전에. 불안과 염려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를 녹초로 만드는 번아웃이 오기 전에. 못된 상사와 사무실의 정치가 있기 전에. 수 많은 이메일과 카톡 메세지, 그리고 불필요한 줌 모임이 있기도 전에. 이미 ‘일’은 존재했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좋았다라는 것이죠.
그리고 앞서 28절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은 아담에게 일을 주시며 “복”을 주셨습니다. 즉, ‘일’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복되고 선한 계획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은 우리의 고통과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일은 왜 이렇게 힘들게 되었을까요? 그 것은 아담과 하와의 원죄 이후, 인간의 탐욕과 불순종이 뒤섞이면서 일의 본래 목적이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 우리가 감당하는 일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예배의 수단이 아니라, 바로 나, 내 자아를 증명하는 경쟁의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지요.
오늘 우리가 일하는 5가지 중요한 이유를 나누며 우리의 월요일이, 우리의 일터가, 그리고 우리의 모든 수고와 노동이 다시 소명의 자리로 회복되기를 축복합니다.
1️⃣ 일은 하나님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일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짐이 되기 훨씬 전에, 하나님의 창조적인 아이디어였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아담에게 “자, 이제 앉아서 푹 쉬고, 과일이나 먹고 기분 좋게 지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산을 주시며 “경작하라. 돌보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조하고, 건설하고, 청지기 역할을 하고, 생산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처음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빛이 있으라.” 그분은 창조의 일꾼으로 세상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보시며 마지막에 말씀하셨습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이 세상을 돌보는 청지기로 부름받은 것입니다. 이 것은 깊이 나아가 이 땅의 일꾼으로서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성품을 이 세상 가운데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할 때, 우리는 일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일하시는 것이었어요. 그분은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설계하시고, 만들어 내신 후에 “참 좋았다”고 평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분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면 — 일하는 것 자체도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십니까? 어렸을 때에 퍼즐을 완성하거나 프라모델 조립식 로보트를 만들거나 오랜 시간 레고를 완성되었을 때에 “끝났다! 이거 내가 만들었어!” 할 때의 뿌듯함. 그건 단순한 성취감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성을 닮은 감정인 것이죠.
저는 어릴 적 아버지께서 우리 집 마당의 잔디를 깎으시던 기억이 납니다. 그건 모터가 달린 전동식이 아니라 손으로 미는 수동 잔디깎이였어요. 아마 제가 7살이었을까요? 어느 날, 제가 도와드리겠다고 했죠. 그런데 막상 밀어보니 너무 무겁더라고요. 낑낑대는데, 안 밀리는 겁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제 손을 감싸 주시고 함께 밀어주셨습니다. 사실 저는 아무 역할도 못한거죠. 그런데 제 마음은 벅찼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그 느낌 때문이죠.
마치 일은 그런 것입니다. 단지 나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 나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동역하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직업을 ‘억지로 해야만 하는 일’ (I have to)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기회’ (I get to)로 바라보십시오. 우리의 일터는 더 이상 고통과 시련의 장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향기로운 제사를 올려 드리는 나의 예배의 제단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게 바로 ‘일’의 본래 모습입니다. 나 혼자 끙끙 버티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가꾸는 일. 직장에서 학교에서, 또 가정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업무는 “하나님, 이것은 주님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고백할 기회가 됩니다.
2️⃣ 일은 우리의 삶을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한 형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하는 것만 ‘영적인 일’이고, 직장 일은 ‘세속적인 일’이라고 분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그분 앞에서 드리는 하나의 통합된 삶으로 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일터까지도 예배의 자리로 보십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찬양을 듣기 때문에 예배이거나 업무를 하기 전 기도를 해서 예배의 처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배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밟는 모든 땅과 우리가 있는 모든 공간이 예배의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 (쉬운 성경)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온 마음을 다해 하십시오.”. 주께 하듯 나의 온 마음을 다 하여 하는 것, 그 것이 나의 예배인 것입니다.
여러분, 일터에서 일할 때 나의 상사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승진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실에서 학생을 가르치든,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든, 아이를 키우든, 컴퓨터 앞에서 코딩을 하든, 그 모든 것은 예배입니다.
아틀란타의 놀스 포인트 교회, 앤디 스탠리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일터가 가장 중요한 예배 장소입니다. 믿음이 현실과 만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일터는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곳이 아니라, 믿음이 실제로 드러나는 무대입니다.
여러분이 직장 동료를 대하는 방식, 정직하게 결정을 내리는 모습, 마감 시간을 지키는 태도 — 그것이 움직이는 예배입니다. 나의 일터에서 나의 온 마음을 다하여 최선을 다할 때, 회사의 직원이거나 학교의 학생이거나 가정의 아버지이거나 어머니이거나 하기 전에 우리의 창조주를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이 NASA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복도를 지나가다가 빗자루를 든 한 청소부를 보았습니다.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하고 묻자,
그 청소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통령님, 저는 우주인들을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
그는 바닥을 닦고 있었지만, 그 일의 의미를 ‘사명’으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바로 예배로 일하는 사람의 시선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교회 귀한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할 때, 더 큰 일이나 더 작은 일은 없습니다. 더 귀한 일과 못한 일도 없습니다. 우리의 일하는 동기가 바로 서 있을 때, 우리의 일도 영원한 가치를 지닙니다. 우리가 드리는 시간, 노력, 땀방울 하나하나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기로운 예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목적이 발견된다면 우리가 감당하는 모든 일은 거룩한 일입니다.
3️⃣ 일은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에 비추는 거울입니다
일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이 어떠한지를 세상에 보여주는 주요한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창의적이시고, 탁월하시며, 일관성이 있으시고, 관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일을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창의성, 탁월함, 일관성, 그리고 관대함으로 수행할 때, — 우리는 그 분의 성품을 세상에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팀 켈러는 자신의 책, 일과 영성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노동을 하도록 지음받았으며 지위나 급여와 상관없이 일은 인류에게 존엄성을 부여한다.”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단순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일터에서 하나님의 대표자로 세상을 섬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대사가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타지에 있는 것처럼,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 바로 천국 시민으로써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대사로,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과, 그 복음을 비추는 통로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기억하십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가는 그 순간에도, 학교 도서관에서 시험을 준비하며 공부하는 그 순간에도, 어쩌면 Job Application을 쓰며 고뇌하고 책상 앞에 앉아있는 그 순간에도, 곧 찾아올 순원들을 위하여 집을 정리하고 없는 솜씨에도 요리를 준비하는 그 순장님들의 모습들 가운데에, 하나님은 여러분의 그 모습을 보고 기억하시며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맡겨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사람들은 당신을 통해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성실함이, 우리의 정직함이, 또한 우리의 섬김이 곧 복음의 통로가 됩니다.
여러분 그 거 아세요?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그들이 읽는 유일한 성경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어쩌면 교회에 평생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성경을 읽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런데요, 여러분, 그들은 여러분이 하는 말보다 여러분의 태도와 삶을 읽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여러분이 일하는 모습이 곧 복음의 해석본이 된다는 거에요.
4️⃣ 일은 결코 우리를 정의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Identity Crisis, 즉 아이덴티티 위기'에 대한 가장 중요한 해결책입니다. 일은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 다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한 무대일 뿐입니다. 우리는 흔히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곤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그들의 직함으로 정의하려 합니다. 그러니 이 세상 가운데 우리는 우리 자녀가 “사”자 들어간 직업을 갖길 원합니다.
저희가 청년 때에 배우자를 위한 기도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을 많이 했었습니다. 저는 참고로 리스트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하나님, 저 아시죠?”라고 기도했을 뿐인데요, 제 아내는 청년 때에 교회 목사님이 아주 정확하게 쓰라고 했다고 무려 50가지를 썼다고 해요. 그런데 그 중에 이게 있었다고 합니다. “사”자 들어간 직업 중 목사는 안됨. 여러분,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주셨어요. 저와 결혼할 때 제가 전도사였거든요.
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정체성은 네 일이 아니라, 네가 누구에게 속해 있느냐에 있다.”
오클라호마의 라이프 교회, 크레이그 그로쉘 목사는 말합니다. “당신의 정체성은 당신이 하는 일이 아니라, 당신이 누구의 것인가에 있다.”
여러분의 직함은 바뀔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 (쉬운말 성경)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정의합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도록 오래전에 이미 예정해 두셨습니다.” 이 본문을 영어로 보게 되면 여기서 작품은 MASTERPIECE라는 단어가 쓰여요. “For we are God’s masterpiece! He created us anew in Christ Jesus, so we can do the good things He planned for us long ago.” Ephesians 2:10 (NLT)
우리는 우리의 하는 일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에게 속하였는가로 정의되요. — 그리고 우리의 일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무대일 뿐입니다.
미국의 갤럽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몰입하지 못한다”며 직장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비율이 70%에 달한다고 합니다.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이 지쳐 있을까요? 저는 우리가 너무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번아웃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쳐 쓰러지는 것입니다. 단순히 “많이 일해서” 지치는 게 아니라, “의미 없이 일해서” 지친다라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직업을 소명으로 볼 때 — 우리가 속한 그 곳에 예수님을 대표하기 위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 힘든 날들조차 내 안에 의미와 목적을 갖게 됩니다.
5️⃣ 일터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선교지입니다
이제, 가장 실천적인 부분입니다. 우리의 일터가 우리의 선교지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는 일터를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는 예수 공동체가 되도록 부름 받았다는 것이죠. 우리가 그렇게 교회에서 외쳤던 IM, I am a Missionary는 우리로 하여금 어떤 메세지를 선포합니까? 선교사가 되기 위해 꼭 멀리 가야한다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이미 우리가 있는 그 자리의 선교사입니다.
내가 가정에서, 나의 일터에서 다른 이들을 대하는 방식, 공동체 안에 갈등을 해결하는 태도,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 누가 보지 않아도 맡겨진 자리에서 정직하게 일하는 모습 — 이 모든 것이 복음의 통로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상사가 우리를 인정해 주기 원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나의 부족함을 통하여서도 영광 받으실 분이시기 때문에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주목하게 되고 —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며 복음의 씨앗은 심구어지고 내가 일하는 자리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서게 됩니다. 성경적 탁월함은 나를 보는 다른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직장을 그만두고 영적인 일만 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예배이며, 선교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지금 지쳐 계신가요?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앉으신 분들 중 어떤 분은 지금 너무 지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쳇바퀴 돌 듯이 공부하고, 일하고, 섬기고…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고 회의감에 시달렸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사역자로 부름받았지만, 사역을 하고 목양을 하다가 보면 너무나 지치는 때가 오더라구요. Pastoral Care라는 미국의 단체가 최근에 올린 통계를 보았습니다. 57%의 목회자들이 자신의 고민과 어려움을 나눌 친구들이 없다고 생각하며 80%의 사역자들과 87%의 사모들이 목회자로서 자신은 한 없이 부족하고 자격이 없다고 느끼며 사역의 자리에서 좌절한다는 것이에요.
이 것 외에도 수 많은 통계 수치들이 나오는데,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거에요. 왜냐하면, 저도 그렇게 느낄 때가 많거든요. 가끔 사역을 나의 직장으로 보게 될 때가 있어요. 목회가 “일”이 될 때가 있어요. 이 귀한 성도님들을 만나고 섬긴 것 자체가 축복인데, I get to serve가 아니라 I have to serve로 느껴질 때가 있어요. 가끔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설교를 하고 이리 저리 필요에 따라 다니다가 주일의 사역을 마치고 언제나 웃고 있는 나의 마스크를 벗어 놓으면 수치와 좌절감이 저를 감쌀 때도 있어요. 주차장에 가서 차에 들어간 후에, 조용함 가운데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을 때도 있어요. 그리고 이런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고 느낄 때에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운지 몰라요. 죄송해요, 여러분, 제가 이렇게 부족하고 연약해요… 여러분도 아마 그런 순간 순간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위로 받으시고 도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은 일터에 있는 직장인만을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가정을 돌보는 분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과 청년들, 어쩌면 취업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이 땅의 모든 일은 주님 안에 다 중요합니다. 직장에 있든, 가정에 있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맡기신 거룩한 소명입니다. 우리의 일터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선교지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예배입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존 마크 코머 목사는 그의 책 가든 시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일은, 다가올 세상을 위한 연습이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는 일 —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신경을 특별히 쓰지 않았던 일들… 나의 아이를 돌보고,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사무실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교회의 안과 밖에서 누군가를 섬기는 일 — 그 모든 것은 바로 영원한 삶, 바로 곧 오실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훈련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소명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소명을 살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우리는 우리가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신실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근본적인 소명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 우리가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기도한 후에 함께 찬양을 하게 될 거에요. 제가 설교 준비를 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찬양을 듣는데, 너무 눈물이 났어요.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네. 내가 이 자리에 선 것도 주의 부르심이라.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결코 실수가 없네.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네. 작은 나를 부르신 뜻을 나는 알 수 없지만, 오직 감사와 순종으로 주의 길을 가리라. 때론 내가 연약해져도 주님 날 도우시니 주의 놀라운 그 계획을 나는 믿으며 살리. 오늘 이 가사가 나의 고백이 되며 나의 위로가 되길 소망합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너무나 부족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사용하시며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우리의 손과 마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길 원합니다.
우리의 시간, 재능, 노력을 헛되이 쓰지 않으시는 주님. 우리가 직장에서 그저 버티는 것을 넘어, 우리의 일을 통해 주님을 나타내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일터와 가정이 주님의 임재가 머무는 거룩한 땅이 되게 하시고, 우리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만왕의 왕 되시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있음을 지칠 때마다, 눈물 흘리도록 외로울 때에도 기억하게 하소서. 나를 부르신 뜻은 내가 감히 생각하는 것보다도 크며 나의 지혜로 측량하지 못하며 언제나 내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 좋고 선하며 완전하신 길로 이끄시는 주님을 믿습니다.
우리의 일이 예배가 되고, 우리의 탁월함이 간증이 되게 하시며, 우리의 쉼이 주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