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에 대한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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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그리스도인들이 소명(또는 "부르심")에 대해 갖는 의문은 주로 이런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특정한 일, 직업 또는 직종으로 부르시고 계시는가?"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께 중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은 큰 의미가 있다. 일이 중요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하기 원하시는지 물어보는 게 마땅하지 않겠는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특정한 일을 위해 (모든 이들은 아니라 할지라도) 사람들을 부르신다. 그리고 일을 행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지침을 모두에게 내려주신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부르심”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 직업, 과제 등을 이끌어주실 때 실제로 "부르심"이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일들은 우리가 보통 직업과 관련된 "부르심"이라고 일컫는 것과 그 의미가 상통한다. 그래서 임시 대답으로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사람들을 특정한 일, 직업 또는 직종으로 부르고 계신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에서 볼 수 있는 부르심의 개념은 그저 삶의 한 부분으로서의 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삶의 모든 방면에서 그분과 함께할 수 있도록 부르신다. 이는 주님께서 당신을 따르라 하신 부르심에 대한 유일한 반응이다. 주님을 따르라고 하신 부르심은 다른 모든 부르심의 근본이다. 하지만 주님을 따르라는 부르심을 교회의 전문 사역자가 되라는 의미로 잘못 해석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 각 방면의 사람들도 동일한 깊이와 헌신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주님을 따르라는 부르심에 대해 살펴본 후, 부르심과 관련된 여러 성경 구절을 통해 특정한 일에 대한 부르심을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성부·성자·성령의 협력을 통해 우리의 일이 어떻게 이끌림을 받고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가 살펴볼 관련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이끄심을 구별하는 법
  • 부르심의 공동체적 성격,
  • 교회의 일이나 교회와 상관없는 일에 대한 부르심
  • 보수가 주어지는 직장을 넘어서 하나님의 창조적이고 구속적인 일에 대한 부르심
  • 어떠한 직업을 가졌든 간에 그 일을 어떻게 행하는지에 대한 중요성
  • 그리스도인들이 직업에 있어서 누릴 수 있는 궁극적 자유

 

하나님의 부르심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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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 속하고 세상을 구원하시는 주님의 일에 동참하라는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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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서 "부르심"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때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주님께로 데려오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는 주님의 일에 동참하도록 부르실 때다. 이러한 의미의 부르심은 실제로 "부르심"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바울의 서신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롬 1: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고후 5:17-20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주님께로 속하라는 부르심은 이 글의 핵심인 직장과 관련된 "부르심"보다 훨씬 심오하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라는 부르심에서부터 이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부르심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우리 주변 세상과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부르심이다. 이것은 한 인간의 존재와 행위를 모두 망라하는 부르심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주님께로 속하고 그분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일에 동참하라는 부르심이 특정한 일과 관련된 부르심보다 항상 선행한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특히 우리의 직업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동참하는 것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어야 한다. 그분이 이뤄내신 창조는 천지의 창조적 행위, 그리고 생산적 행위의 기초를 이룬다(요1:1-3).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모든 직장에서 정의, 치유, 화해, 긍휼, 자비, 겸손, 온유, 그리고 오래 참음을 통해 나타날 수 있다(골3:12). 그분의 구속의 역사는 복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항상 의도하셨던 대로 이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아우른다. 그리고 이 구속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인류에게 위임하신 창조, 생산, 그리고 부양의 일과 함께 일어난다. 성경에는 구속의 역사가 창조의 역사보다 우선이라고 서술하는 곳은 없다. 그 두 가지 역사는 모두 계속되는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와 구원의 역사에 모두 동참하라는 명을 받았다.[1]

 

 

John Stott, Christian Mission in the Modern World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75, 2008), 48-54쪽.

모든 이들을 향한 일의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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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정한 일로 이끌어주실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일을 하라고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인간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노동하라고 명령하신다는 것이다. 성경의 시작 부분에서 하나님께서는 노동을 인류의 본질로 삼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셨으며, 하나님 또한 일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동산에 보내신 이유는 동산을 가꾸는 일을 시키시기 위해서였다. 이후 성경의 다른 여러 부분들에서도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껏 일을 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리고 일에 대한 말씀은 성경의 마지막까지 계속된다. 에덴동산에도 일이 있으며 새 하늘과 새 땅에도 일이 있다. 

창 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2:15,19-20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출 20: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살후 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계 21:24-26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사 65:21-22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이 건축한 데에 타인이 살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심은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내가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이며

 

   이러한 구절들을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부르심”이란 우리가 일을 하기 위해 “창조”되었고 “명령” 받았다는 뜻임을 인식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 모든 사람들이 일을 위해 "부르심"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일꾼으로 세우셨고, 비록 특정한 일자리를 정해주신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일을 하라고 명령하고 계신다. 어떤 특정한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고 계시는지는 분간하기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일꾼으로 만드셨고 여러분의 능력 안에서 일을 하기를 바라신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단순한 일이 아닌 삶을 향한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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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일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사실 일은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 주님께 속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골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우리의 직업은 주님께서 이 세상을 구속하시는 일에 대한 우리 소명이나 그 일에 대한 우리의 섬김에 있어서 반드시 가장 중요한 측면은 아니다. 우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일은 유급 노동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란 점이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양육하거나 장애를 가진 가족을 돌보는 일, 또는 방과 후 학생들에게 개인 교습을 하는 일 등 보수가 없는 일에 우리를 쓰시기도 한다. 우리가 임금을 받는 일에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일로 인해 우리가 무보수로 다른 이들을 섬기는 행위를 못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뜻이 아닐 확률이 높다.

 

   만약 여러분이 보수를 받는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일, 즉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시는 일은 직장 밖의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다. 여러분의 직업이 돈에 대한 필요를 채울 수는 있지만 —이 또한 그 자체로 일을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의 일부를 충족시키는 것— 그 일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다른 목적들을 충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아이들을 돌보거나 나이든 분들, 또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돌보는 것도 일종의 일이며,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또 다른 보수를 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반면에, 소위 취미라고 말하는 것들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끄시는 가장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다. 여러분은 글쓰기, 그림 그리기, 음악, 연기, 천문학, 청년부 지도, 역사학회 봉사활동, 자연보호구역 관리 등 수없이 많은 종류의 일에 종사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일이 여러분의 소명이라면, 아마 그 일이 그저 여가 활동에 지나지 않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진지하게 그 일에 임할 것이다. 혹 그 일이 생계 수단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일과 여가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1] 하지만 어떤 활동도 보수가 있든 무보수이든, 어떤 이에게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이에게는 여가일 수도 있다.

 

   둘째로, 우리는 일이 삶의 다른 부분들을 지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특정한 일이나 직업으로 여러분을 이끄신다고 하시더라도, 그 일에 한도를 설정하여 인생의 다른 요소들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나 이끄심을 위한 공간을 남겨놓아야 한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결혼과 자영업의 길로 이끄신다면 여러분은 그 두 부르심에 대한 시간과 책임의 균형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일 때문에 여가, 휴식, 그리고 예배를 몰아내서는 안 된다. 일과 삶의 다른 부분들의 균형을 맞추는 것에 대해 정해진 공식은 없다. 하지만 어떤 일에 대한 소명 의식 때문에 삶의 다른 영역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콘텐츠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음 : www.theologyofwork.org 에서 TOW 프로젝트 아티클 "일과 쉼" 을 보라.

특정한 일을 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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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우리는 특정한 업무, 일, 직업 또는 일의 종류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살펴볼 준비가 되었다. 우리가 살펴본 부분들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사람들은 주님께로 속하고 그분의 창조 및 구속의 사역에 동참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2. 누구든 가능한 능력 안에서 일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저 일을 위해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위해 부르신다.

 

   이러한 배움을 통해 직업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높은 관심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떠한 직업을 가졌든지,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 아래 그분의 창조와 구속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정확하게 어떠한 종류의 일을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보다 낮은 수준의 문제이다.

 

   우리가 올바른 일과 직업을 갖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높은 관심사는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이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으시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삶과 일에 대한 이끄심을 받고 그에 대한 권능을 부여받는다. 구약성경에서 브사렐과 오홀리압이 성막을 건축하는 일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일에 필요한 능력을 사람들에게 주신다. 하지만 이제 성령께서는 일상적으로 믿는 이들을 특정한 일로 이끄시고 그들이 필요한 능력을 주신다(고전12:7-10).[1] 하나님께서는 일의 종류뿐만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인도해주신다.

 

 

TOW 프로젝트 운영위원회는 모든 은사와 기술, 재능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여긴다. 신약에서 (예를 들면, 고전12-14장, 롬12장, 엡4:11-16, 벧전4:10-12) 논하고 있는 성령의 은사들은 본문에 열거된 특정 능력들로국한되거나 교회 안에서만 사용되도록 제한되어 있지 않다. 본 글은 이러한 입장을 증명하기 위해 시도하는 것은 아니라, 단지 그것을 인정할 뿐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www.theologyofwork.org의  “고린도전서와 일”에서 “은사 공동체 (고전 12:1-14:40)”을 보라.

특정한 종류의 일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 분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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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일에 대한 직접적이고 명백한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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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심에 대한 성경 속의 궁극적인 내용이 예수님을 따르라는 부르심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면, 이제 특정한 종류의 일에 대한 부르심을 살펴볼 차례이다. 만약 우리가 의미하는 "부르심"이 특정한 업무, 일, 직업, 또는 일의 종류를 맡으라는 하나님의 직접적이고 명백한 명령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부르심에 대한 내용은 성경에서 쉽게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의미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100명도 채 안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방주를 지으라고 노아를 부르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부르시어 임무를 행하라고 명령하셨다(출3:4,28:1).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삼상3:10), 예레미아(렘1:4-5), 아모스(암7:15)등의 선지자들을 부르셨다. 그리고 아브람과 사라, 그리고 다른 몇 명의 사람들에게 여정 또는 이주(이는 직장과 관련된 부르심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를 하라고 부르셨다. 또한 요셉, 기드온, 사울, 다윗, 그리고 다윗의 후손들과 같은 정치적 지도자를 세우시기도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브사렐과 오홀리압을 성전 건축의 최고 직공으로 세우셨다(출31:1-6).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몇 명의 제자들을 부르셨고(예: 막3:14-19), 성령께서는 바나바와 사울을 부르셔서 선교사가 되게 하셨다(행13:2). 항상 "부르심"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은 아니지만, 위와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특정한 사람을 특정한 일로 부르시는 명백한 이끄심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예시를 제외하면, 하나님께로부터 특정한 종류의 일을 위해 개인적인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는 오늘날에도 특정한 일을 위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부르심이 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직접적이고 명백하게 여러분을 특정한 일로 부르시고 계신다면, 이러한 글을 통해 이끄심을 받을 필요가 없지만 성경에서 그러한 종류의 부르심이 굉장히 드물게 나타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직접적이고 확실하며 개인적인 부르심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진 않을 것이다. 그 대신에, 하나님께서 너무 드라마틱하지 않은 방법을 통해 특정한 종류의 일로 사람들을 이끄시고 인도하시는가의 여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일이나 직업으로의 이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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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특정한 일이나 직업을 위한 직접적이고 개인적이며 명백한 부르심을 주지는 않으시지만, 성경 공부나 기도, 교회 공동체, 그리고 개인적 묵상 등과 같이 조금 덜 극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이끄신다.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능력은 이 글이 다루는 범위를 벗어난다. 하지만 하나님의 직업적인 이끄심과 관련해 중요한 세 가지 고려사항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세상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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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고려사항은 세상의 필요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기대하시는 것을 나타내는 가장 강력한 지표는 바로 하나님이 뜻하시는 대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떠한 일이 필요한지에 대한 여러분의 인식일 것이다. 꼭 규모가 크거나 전 세계적인 문제일 필요는 없으며, 그저 이 세상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들이면 된다. 여러분 자신과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생계를 꾸리는 것도 성경에서 언급된 예시 중 하나이다. 

잠 13:22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쳐도...

잠 14:1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딤전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딛 3:14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

 

   또 다른 성경적 예시는 가족 이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잠 14:21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살전 4:11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p>

눅 3:10-11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잠 11: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마 25:34-36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더 큰 사회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것 또한 성경의 명령이다.

렘 29:5-7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물론 여러분이 세상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범위를 어느 정도 좁혀야한다. 우선 자녀들을 양육하는 문제나 대출을 갚는 것 등 개인적으로 책임이 있는 문제들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그걸 넘어서, 여러분이 잘 충족시킬 수 있는 필요, 또는 사람들이 해결하기를 꺼려하는 것이나 여러분이 특히 시급하다고 생각되는 필요에 관심을 갖자. 예를 들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것보다 도시 또는 마을의 공직에 출마하는 것이 더 유리한 조건에 있을 수도 있다. 또는 지구 맞은편의 국가에서 행해지는 인권침해 행위를 기록하고자 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될 수도 있다. 혹은 밴드 활동을 시작하는 것보다 비행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일이나 직업 이외에 인생의 어떤 것이 세상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도움 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는 사실에 대해 확신할 수도 있다. 만약 자녀들을 방치해둔 채, 비행 청소년들을 상담하는 일을 한다면 그 일은 의미가 없게 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이들에게 세상이 필요한 것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저 하나님으로부터의 특별한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알아차리고 일을 시작하기를 기대하시는 듯하다. 세상의 필요를 특정한 일의 부르심으로 해석하는 일에 어떠한 성경적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주어진 다양한 형태의 분별력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여러분의 재능과 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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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고려해야 되는 것은 여러분의 재능과 은사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사람들이 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은사를 주신다고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부여해주시는 은사와 재능을 나열하고 있다. 

사 28:24-26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쉬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자기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소맥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아니하겠느냐?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롬 12:6-8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1]...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고전 12:7-10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마지막 두 말씀이 나타내는 것처럼, 사도 바울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보통 교회 내에서 그 은사의 쓰임에 대해 언급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행한 모든 일들이 주님을 위한 일이라면(골3:23),성령의 은사가 직장에서의 쓰임을 위해서도 주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은사와 재능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은사 평가 도구

은사 평가 도구는 여러분의 은사를 분별하고 이들이 다양한 종류의 일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탐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가장 엄격하고 통계적으로 검증된 도구는 높은 수준의 해석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전문 카운슬러나 기관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그 예로는 스트롱 직업흥미검사(Strong Interest Inventory), MBTI 성격유형 선호도검사(Myers-Briggs Type Indicator), 캘리포니아 심리검사(California Psychological Inventory), 직장-삶 가치 체크리스트(Work-Life Values Checklist), 그리고 글로벌 기준으로 개발된 글로벌 인격검사(PDINH: Global Personality Inventory) 등이 있다. 이러한 검사들이 쓰는 언어가 기독교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인 능숙한 해석자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직업을 위해 주신 은사와 이끄심을 탐색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또한 의식적으로 영적 및 신학적 토대를 기반으로 하는 기독교적 도구들도 있다. SIMA(the System for Identifying Motivated Abilities)와 MAP (Motivated Abilities Pattern)가 전문적 해석을 요하는 그러한 종류의 도구들이다.

리처드 볼즈(Richard Bolles)의 저서인 "당신의 파라슈트는 어떤 색깔입니까?(What Color Is Your Parachute, 매년 발간됨)"와 케빈 브렌플렉—케이 마리 브렌플렉(Kevin and Kay Marie Brennfleck)이 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위한 소명 찾기(Live Your Calling: A Practical Guide to Finding and Fulfilling Your Mission In Life)"처럼 전문적 해석 없이도 사용될 수 있으며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도구도 있다. 이러한 도구들을 혼자서도 사용할 수 있지만, 될 수 있으면 다른 기독교 교회 공동체의 범위 내에서 전문적인 직업 상담자의 도움을 받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리스도인 직업 상담자는 거의 모든 기독교 전문학교와 대학교, 그리고 일부 개별 교회에도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자신의 은사를 살펴보고 직장에서의 쓰임에 대해 알아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많은 도구들이 있다. ("더 탐색해보기"를 참고하라.) 하지만 우리는 재능과 은사에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서양의 현 세대는 인류 역사상 은사를 가장 잘 분석한 세대지만, 그러한 분석에 너무 매달리는 경향은 자기 몰두로 이어질 수 있으며 세상의 필요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될 수 있다. 위의 성경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개인적 만족이 아닌 공동의 선을 위해 은사를 내려주셨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직업을 갖게 된 후에야 비로소 필요한 은사를 주신다. 따라서 여러분이 이미 가지고 있는 은사에 대해 너무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고 싶어 하시는 은사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미 가지고 있는 은사를 통해 세상의 필요를 어떻게 가장 잘 충족할 수 있을지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부르셨다고 여기고, 평범한 피아노 연주와 열의 없는 연습으로 몇 년을 보낸 뒤 하나님께서 필요한 재능을 여러분에게 부여해주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자아도취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재능과 은사를 통한 직업적인 인도하심은 균형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료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이를 구해야 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우리는 일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 삶의 다른 부분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정생활, 우정, 오락, 자원봉사, 그리고 삶의 모든 활동 범위를 위한 은사도 우리에게 주신다.

 

 

그런데,  이 구절(롬12:6)은 Myers-Briggs Personality Type Indicator가 출판된 제목의 영감이자 원천이었으며,  일반적으로 세상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은사가 직업적 소명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여기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Isabel Myers, Gifts Differing: Understanding Personality Type (Palo Alto, CA: CPP Books, 1993)을 보라.

가장 진정한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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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성경은 여러분의 가장 진정한, 그리고 가장 깊은 갈망이 하나님께도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 145:19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요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하라고 부르시는 경우, 자기가 싫어하는 일로 부르실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왜 하나님께서 굳이 자신들을 부르셔야 한단 말인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소름끼치는 상상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이 살기 싫어하는 나라로 선교를 떠나라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것이다. 하지만 뛰어난 선교사들은 자신이 섬기는 장소와 그곳 사람들에 대한 깊은 갈망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선교사가 되길 원하신다고 누가 그러던가?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떠한 일이나 직업을 담당하라고 인도하신다면, 여러분 마음속의 강한 갈망을 통해 깨닫게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우리 속의 가장 진정한, 그리고 가장 깊은 갈망을 접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우리의 동기는 죄와 타락한 세상으로 인해 크게 혼동되어, 겉으로 드러나는 갈망과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속 깊이 심어주신 진정한 갈망이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롬 7:8, 15, 21-23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단순히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하세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 또는 행복하게 만들 것처럼 보이는 것은 세상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일, 공동의 선을 위해 여러분의 능력과 은사를 사용하는 일, 또는 여러분의 진실한 갈망을 충족시키는 일과 거리가 멀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정반대가 사실인 경우도 종종 있다. 여러분의 진정한 갈망을 실현하는 그 일이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보일 수도 있고 엄청난 희생과 어려운 노동을 수반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장 참된 갈망은 굳이 직업에서만 충족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면에서 충족될 수도 있다. 자신이 진실로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성숙해야 한다. 어쩌면 결정을 마주하고 있는 그 순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성숙이 요구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여러분이 싫어하는 일로만 하나님께서 부르실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은 버릴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프레드릭 뷔히너(Frederick Buechn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는 곳은 당신이 마음속 깊이 즐거워하고 더불어 세상이 크게 갈망하는 곳입니다."[1]

 

 

Frederick Buechner, Wishful Thinking: A Seeker’s ABC, 개정판 (San Francisco: Harper, 1993) “Calling.” 중.

주님 안에서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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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필요, 당신의 재능과 은사, 그리고 가장 진정한 갈망 등과 같은 세 가지 고려사항은 참고용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첫째로, 타락한 세상에서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전무하다. 역사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예, 농부, 주부 등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으며 가장 선진화된 국가들 외의 지구상 대부분의 국가들은 아직도 그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일부 선진국 시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예, 농부, 또는 주부가 되길 바라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여건이 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직업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일부 사람들이 농사일이나 집안일 또는 다른 종류의 타당한 일을 즐기지 않는다거나 즐기면 안 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의 상황들로 인해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직업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암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보살핌 아래 종이 되는 것 또한 축복일 수 있다(마24:45-47, 고전7:21-24). 그렇다고 오늘날의 세상이 노예를 합법화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단지 여러분이 어디서 일을 하든, 하나님께서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여러분이 가진 직업을 좋아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더 낫다고 여겨지는 일을 찾고자 애쓰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선진국에서도 생계유지를 위해 어떠한 종류의 일을 할지에 대한 선택권이 거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독교 공동체는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고,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를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일을 잘 해내야 한다. 여러분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통해 공동의 선을 위해 일하고, 일을 통해서 더 많은 만족을 얻고, 여러분이 처한 상황의 부정적인 부분을 극복하거나 견딜 수 있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일로 인한 고생, 고된 노동, 그리고 어려움으로부터 우리를 궁극적으로 해방시켜주시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여러분에게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살펴본 세 가지 고려사항들은 —세상의 필요, 당신의 은사와 재능, 그리고 가장 진정한 갈망은— 안내용일 뿐이지 강압적인 것이 아니다. 주님 안에서 믿는 자들은 완벽한 자유를 얻는다.

요 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이는 여러분에게 위험을 감수하고, 실패하고, 실수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음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전혀 알지 못하고, 그 일에 대한 요령도 없으며, 원하지도 않는 직업으로 여러분을 이끄실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일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 반대로 여러분은 나이가 든 후에야 어떠한 직업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놓쳤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가능성을 실현하거나 그에 적합한 직업을 얻었다는 것에 따라 마지막 심판을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여러분은 믿음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이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따라 심판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로 속하라는 부르심만이 영원히 변치 않는 부르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이 세상에서 믿는 지체들의 공동체가 되었다(롬12:5).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가 뜻하는 바는 우리가 공동체와 단절되었을 때가 아니라 함께 대화를 나눌 때 하나님의 부르심 또는 이끄심을 가장 잘 분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떤 일로 부르시는지 알아보는 과정에 있어서 세상(공동체의 한 형태)의 필요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하나님의 이끄심을 분별하는 일에 있어서 공동체 또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여러분을 위한 하나님의 이끄심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보는가? 다른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보이는 은사나 재능, 세상의 필요, 그리고 진정한 갈망을 인식하면서 어떠한 경험을 하였는가? 여러분을 잘 아는 공동체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이끄심에 대해 상의해보자. 영적인 동반자나 조언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여러분과 가깝게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의견을 모으거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끄심을 구별해가는 과정 속에서 한 집단의 사람들에게 여러분과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져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좋다.

 

   세상에서 필요한 다양한 종류의 일로 누가 하나님의 이끄심을 받고 있는지 알아보는 일에 있어서, 공동체는 매우 핵심적인 요소이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비슷한 은사와 갈망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모두가 같은 일을 하길 원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따라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끄시는 일뿐만 아니라, 그분이 다른 이들을 어떠한 일로 부르시는지도 분별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는 조화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균형 잡힌 앙상블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의사들은 강력한 은사와 재능을 —그리고 흔히 치료를 향한 강한 갈망을— 통해 세상의 많은 신체적 치료에 대한 필요를 다룬다. 하지만 적어도 미국 내에서는 전문의들은 많지만 공동체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1차 진료 의사들은 충분치 않다. 의대 학생들은 차례차례 자신들의 은사와 갈망, 그리고 세상의 필요를 통해 의학에 대한 이끄심을 분별한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의사들의 앙상블은 점점 그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분별하는 것은 공동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교회 사역 - 더 높은 수준의 부르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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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전도사, 선교사, 목사, 성직자, 목회자 같은 교회 사역자들이 다른 교회 봉사자들보다 더 높은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에서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하는 부분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중세시대까지 수도승이나 수녀들의 "종교적" 삶은 다른 일반적인 삶보다 더 신성하다고 널리 여겨졌다. 오늘날 거의 모든 교회의 교리에서 그러한 종류의 일과 평신도의 일이 동일한 가치를 지녔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왜곡은 안타깝게도 교회의 모든 전통에 남아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개인들을 교회와 관련된 일뿐만 아니라 관련 없는 일로도 부르신다. 예를 들면 : 

 

교회 사역을 향한 부르심

출 28:1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막 1:16-17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행 13:2, 5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 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교회 사역 이외의 일에 대한 부르심

신 31: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죽을 기한이 가까웠으니 여호수아를 불러서 함께 회막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에게 명령을 내리리라 모세와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회막에 서니

(모세와 여호수아는 원래 신앙적/종교적 지도자가 아닌 군사적/정치적 지도자였다. 이 둘은 모두 하나님과 특별히 가까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종교적 지도자가 된 것은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부르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삼상 16:12-13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따라서 하나님께서 교회 사역자들만 부르시고 다른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부르시지 않는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이러한 혼란이 생겨나는 이유는 많은 교회들이 성도들에게 사역자로 임명을 받거나 목사, 성직자, 목회자로 섬기기 위해서는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르심"이라는 단어는 전일제로 교회 사역을 맡는 결정, 또는 목회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에서 볼 수 있듯이, 직접적이고 확실한 부르심을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오히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이끄심에 대한 강렬한 느낌을 의미할 확률이 더 높다. 앞에서 다뤘듯이, 하나님의 이끄심은 교회와 관련 없는 일과 직업에서도 강하게 임하실 수 있다. '일의 신학' 프로젝트에서는 교회 사역을 주제로 삼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교회 사역에 대한 "부르심"이 교회와 관련 없는 일에 비해 더욱 강력하고, 직접적이며, 분명하거나 또는 필요한 것인지를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교회 사역이 다른 일에 비해 일반적으로 더 높은 부르심은 아니라는 점과, "부르심"이라는 단어가 교회 사역에서 적용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일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교회 사역이 아닌 일들도 역시 교회 사역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적 전업"이라는 점을 확언할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향한 전업으로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끊임없이 행하라고 부르심(명령 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을 받았다.

골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에 대한 이야기를 끝마치기 전에, 우리가 방금 살펴본 것과는 정반대로 딤전5:17-18을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이 관점에 따르면, 교회 장로(오늘날 현대적인 교회 관점으로는 목사나 성직자와 거의 비슷한 위치)는 실제로 더 높은 부르심을 받은 것이 된다.

딤전 5:17-18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목사가 되는 것은 다른 직업에 비해 "갑절이나 존경할"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경 주석은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1] 더 정확한 해석은 그저 적당히 일을 하는 다른 장로들에 비해 두 배나 존경(또는 사례금)을 받을 만큼 일을 잘 하는 장로들을 가리킨다는 해석이다. 또는, 남는 시간에 봉사를 하는 장로들과 교회 일을 전업으로 삼는 장로들을 대조하는 것일 수도 있다.[2] 구약성경에서 임금과 관련된 인용구를 살펴보면, 위의 구절이 일을 잘하거나 전업으로 일하는 장로에게 사례하라는 의미일 뿐, 교회 사역과 다른 일을 비교하는 구절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교회 사역을 전업으로 하는 장로들과 맡은 일을 탁월하게 잘 해내는 장로들은 교회에게서 보상을 잘 받을만하다는 의미다. 이 구절은 실제로 목사들과 일반인들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들끼리 비교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시기에 그 가치가 동일하지 않은 일은 오직 성경에서 금지된 일이나 성경적 가치와 맞지 않는 일일 뿐이다. 예를 들어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언, 또는 탐욕을 필요로 하는 일이나(출20:13-17), 고리대금업(레25:26), 건강을 해하는 일(마10:8), 또는 환경을 해치는 일(창2:15) 등은 하나님이 옳게 보시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더 낮게 보신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고 옳지 않은 일을 하게 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반드시 악인이라는 것도 아니다. 신22:21 말씀은 창기의 행동을 비난하고 있지만, 창녀에 대한 그리스도의 반응은 비난이 아니라 구제였다(눅7:47-50; 마21:31-32). 어떤 상황에서는 이러한 종류의 일이 그나마 다른 나쁜 일보다 나을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종류의 일이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위해 예비해두신 일일 가능성은 없다.

 

   목회나 교회 사역으로의 부르심이 다른 종류의 일로의 부르심보다 신성한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직책이나 일터가 아니라,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I. Howard Marshall, The Pastoral Epistles,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Edinburgh: T & T Clark, 1999), 610쪽 이후를 참조하라.

William D. Mounce, Pastoral Epistles, Word Biblical Commentary, Vol. 46, (Nashville, TN: Thomas Nelson, 2000), 309쪽.

직업 바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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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그들의 일로 이끄시고 인도하신다면, 직업을 바꾸는 것이 과연 괜찮은 노릇일까? 지금 이미 가지고 있는 직업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반발하는 것이 되진 않을까? 16세기 개신교 신학자였던 마틴 루터는 직업을 바꾸는 것에 반대론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대체로 다음 구절에 대한 그의 이해에 기초를 둔 반대였다.

고전 7: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루터는 "그대로 지내라"라는 것을 직업과 결부시켰으며, 그에 따라 그리스도인은 직업을 바꾸면 안 된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루터의 동시대 사람인 장 칼뱅은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현대 신학자들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그의 해석은 적어도 일부 상황에서는 직업을 바꾸는 것도 괜찮다고 말하는 바로 다음 구절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전 7: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1]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일로 인도하시는 요소가 삶의 과정 속에서 변화할 수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직업을 바꾸라고 인도하실 수 있다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2] 여러분은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 여러분의 능력과 경험을 키워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더 큰 임무를 맡기시면서 여러분이 직업을 바꾸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25:21)

 

   반대로 여러분이 말년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직업을 바꾸라고 요구하실 수도 있을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찾는 것이 새로운 일이나 직업을 얻으라는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더 높은 부르심"으로 부르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앞서 다룬 옳지 않은 종류의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또는 기독교적이지 못한 습관에서 헤어나지 못하도록 위협하는 일이나 그러한 동료들이 있는 직업이 아닌 한, 직업을 바꿀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여러분이 직업을 바꾸든 바꾸지 않든, 이제는 성경적인 명령과 가치, 그리고 선행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전과는 다르게 일해야 할 것이다. 마치 세리였던 삭개오처럼 말이다.

눅 19:5-9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Avail yourself of the opportunity(기회를 붙잡아라)”는 NRSV 각주로 대체한 해석이다. 주된 해석은 더 모호하다 : “Make use of your present condition now more than ever(지금 네 현재 상황을 그 어느 때보다 활용하라)”. NRSV 해석은 NIV, TNIV, NASB, NEB, 그리고 King James를 포함하는 대부분의 현대 번역판과 동일하다.

Miroslav Volf, Work in the Spirit: Toward a Theology of Work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1), 109쪽.

일을 하는 방식에 있어서 하나님 인도하심 분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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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일할 것인가? 이것은 적어도 여러분이 어떤 일, 어떤 직업을 가졌는가와 꼭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모든 직업에 있어서 여러분은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여러분의 은사와 재능을 발휘하며, 여러분의 가장 깊은 갈망을 표출하거나 발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지니고 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매일 다짐하는 것은, 내일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스스로를 재정비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실제로 오늘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한 그 미약한 부분이 때로는 미래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비결로 작용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일생에 걸쳐서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르심을 받았든 안 받았든,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 있어 그리스도의 목적을 위해 힘쓰는 것이다. 직장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방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www.theologyofwork.org TOW 프로젝트에서 '진실과 거짓', '직업 윤리', 그리고 아직 업로드 되지 않은 *일의 의미와 가치,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갈등, *리더십 그리고 *직장에서의 복음전도와 같은 주제 아티클에서 다루고 있다.

 

 

소명에 대한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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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일반 직업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을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오래 동안 이어져 내려온 잘못된 편견, 즉, 일반적인 일은 하나님께 중요하지 않으며 그분의 부르심을 받을 가치도 없다는 편견을 고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분의 일이나 직업의 중요성을 우상숭배의 수준까지 이를 정도로 높게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올바른 직업을 얻는 것은 구원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다. 심지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일에 대해 지닌 참된 목적은 공공의 선을 위한 것이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일생 동안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일은 자신에게 완벽하게 맞는 일을 찾으면서 이루어지기보다는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능력껏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이룰 수 있는 일이다.

 

더 자세한 탐구를 위해

역사적-신학적 관점

For an historicat본 아티클보다 더 상세하게 소명에 대한 역사적-신학적 관점을 알고자 한다면, Gordon Preece의 Vocation in Historical-Theological Perspective(영어본문)를 보라.

 

다양한 직업의 적합성

Banks, Robert. God the Worker: Journeys into the Mind, Heart and Imagination of God. Sutherland, N.S.W.: Albatross Books, 1992.

Pope John Paul II. On Human Work (Laborem Exercens). Vatican Translation. Boston: Pauline Books & Media, 1981, 특히 6, 9, 10, 21 그리고 22장.

Richardson, Alan. The Biblical Doctrine of Work. London: SCM Press LTD, 1952, 특히 “Creative Craftsmanship and Skill,” “Work as Divine Ordinance for Man,” and “‘Vocation’ in the New Testament.”장. Richardson은 일반적으로 본 문서보다 일상적인 일을 회의적으로 보며, 그의 성경적인 접근법은 오늘날 구식으로 보여지는 1940-50년대 감성이다. 그러나, 그는 그 책의 간결함을 고려해 볼 때 일과 관련된 성경들의 훌륭한 수집자료를 엮어냈고,  그의 챕터들은 가장 중요한 신앙-일 주제들을 논하고 있다. 또한, TOW 프로젝트처럼 그는 폭넓은 참여와 반응을 자아내도록 고안된 과정을 사용하였고, 이는 출판된 초안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그의 결론이나 성경적 관점을 무조건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책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많다.

Stevens, R. Paul. Doing God's Business: Meaning and Motivation for the Marketplace. Grand Rapids, MI: Eerdmans, 2006, 특히 1장과 2장.

 

진로 지도와 은사 분별하기

Banks, Robert. Faith Goes to Work. Eugene, OR: Wipf & Stock, 1999.

Mackenzie, Alistair, Wayne Kirkland and Annette Dunham. Soul Purpose. Christ Church, NZ: NavPress, 2004.

Schuurman, Douglas J. Vocation: Discerning Our Calling in Life.  Grand Rapids, MI: Eerdmans, 2004.

Schuster, John P. Answering Your Call: A Guide for Living Your Deepest Purpose. San Francisco: Berrett-Koehler Publishers, 2002.

 

크리스천 생각과 방법 안의 소명

Guinness, Os. The Call: Finding and Fulfilling the Central Purpose of Your Life. London: Word Publishing, 1998.

Hardy, Lee. The Fabric of This World: Inquiries into Calling, Career Choice, and the Design of Human Work. Grand Rapids, MI: Eerdmans, 1990.

Placher, Williams C., ed. Callings: Twenty Centuries of Christian Wisdom on Vocation. Grand Rapids, MI: Eerdmans, 2005.

Preece, Gordon R. The Viability of the Vocation Tradition in Trinitarian, Credal and Reformed Perspective: The Threefold Call. Lewiston, NY: Edwin Mellen Press, 1998.

Stevens, R. Paul. The Other Six Days: Vocation, Work, and Ministry in Biblical Perspective. Grand Rapids, MI: Eerdmans, 2000.

Volf, Miroslav. Work in the Spirit: Toward a Theology of Work. Eugene, OR: Wipf & Stock,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