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신앙(3):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다르게 일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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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신앙(3):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다르게 일할 수 있을까요?

(How Can Christians Work Differently?)

골 3:22-24

시애틀 형제 교회

권준 담임목사

 

<주의 말씀은 내 인생의 빛입니다…>

한 성도가 ‘주의 일’을 하겠다며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을 시작했습니다. 이 말에 어폐가 있어요. 이 성도는 목회자나 선교사가 하는 일이 ‘주의 일’이라고 구분지어 말하고 있어요. 크리스천 모두가 직장을 그만두고 목회나 선교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모든 일이 ‘주의 일’입니다. 저는 여러분중에 목회자나 선교사가 많이 나오길 바래요. 여러분의 자녀가 신학을 가겠다고 하면 두 손 들고 축복해 주세요. 신학 가겠다고 하면 뭐라고? 내가 너 예수 잘 믿으라고 했지 언제 목사되라고 했냐?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부르신 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부르신 나의 일터에서 나의 삶이 하나님을 보여주는 복음이 되어야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너를 보니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같다”는 고백이 나와야죠. “교회는 열심히 다니는 것 같은데 너를 보면 하나님이 계시는 것 같지 않아. 하나님이 계신다 해도 너가 믿는 하나님을 나는 안 믿어.” 그러면 안돼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어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것은 사람을 하나님과 거의 같은 영적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 하나님은 사람을 당신의 속성을 가진 왕적 존재로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사람에게 다스리게 하셨어요. 다스리다(rule over)는 히브리어로 라다. ‘라다’의 가장 기본적인 뜻은 “살게하다, 돌보다”는 것. 힘으로 지배하고 군림하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과 자연을 돌보고 살게하라는 것.

여러분, 살림(household)이라는 단어가 있죠. 살림살이, 나라 살림, 집안 살림. 살림의 어원은 살리다. 제 아내는 살림을 잘합니다. 집안을 잘 돌보고 살린다. 내 아내는 살림을 할 줄 몰라, 죽인다는 것. 하나님은 사람에게 당신이 창조한 세상을 돌보고 살게 하셨어요.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어요. 세상을 돌보고 살게 하는 것, 여기에 사람의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그런데 세상을 돌보고 살림으로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누려야 할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탐욕으로 사탄에 속고 말았어요.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군림하고자 했어요. 하나님과 교제하는 즐거움을 거절하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자기가 원하는 길로 갔어요. 이 불순종이 인류의 타락을 가져오게 된 것. 타락의 결과로 사람에게는 영원한 사망이 임했어요. 땅은 저주를 받았어요. 일터는 선과 악의 경계에서, 사랑과 증오 사이에서, 정직과 부패 사이에서 싸우는 전쟁터가 되고 말았어요. 기쁨이었던 일이 고통스러운 노동이 되었어요.

타락한 이 세상은 정녕 소망이 없는 것일까?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하나님은 인류의 회복을 계획하시고 온 세상의 구속을 위한 메시아가 오심을 약속하셨어요. 그리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 회복의 길을 열어 주셨어요. 인류의 회복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세계의 회복의 길을 열어 주셨어요. 복음이 임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가진 자로 다시 회복되었어요. 하나님은 회복된 저와 여러분에게, 교회 공동체에게 피조세계를 살리는 일을 맡기셨어요.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저와 여러분에게.

그래서 시편 8편을 기록한 다윗은 놀라고 감탄하는 것. “하나님, 사람이 무엇이관데, 사람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해와 달과 별, 우주의 광대함을 보면서 거기에 비하면 사람은 nothing,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사람이 무엇이길래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십니까?”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영광. 그래서 다윗은 이 영광을 감탄하고 감사해 하며 하나님을 찬양.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Lord, our Lord, how majestic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 너무나 놀라운 거예요. 여러분, 놀랄 일 아닙니까? 놀래봐요. 와, 놀라워요. 늙는다는 것이 무엇? 감탄사가 줄어가는 것.

그리스도인은 누구?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이에요. 그래서 더이상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롬 12:2)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진리)를 따라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삶을 살아갑니다. 이런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눈을 성경적 세계관이라고 합니다. 성경적 세계관은 창조, 타락 그리고 구속. 성경적 세계관은 구속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일을 하나님의 구속의 관점을 가지고 보아야. 그리고 내게 주어진 일은 하나님의 소명임을 자각해야. 나의 일터는 단순히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일터를 돌보고 살림으로, 일터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소명의 장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일터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므로, 하나님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므로, 동료 사람들에게 우리가 왜 그렇게 살아가는지 궁금증을 유발시켜서 우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증거하므로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일터에서 일하는 자세가 달라야.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다르게 일할 수 있을까요? 먼저 일에 대한 사고의 전환(Paradigm Shift)이 일어나야 합니다. 어떻게? 일을 (거룩)한 일과 (세속)된 일로 나누는 이분법을 거절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있다? 없다라고 말하지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막노동은 천한 것이고, 넥타이를 맨 화이트 칼라 직업은 고상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머리를 쓰는 직업은 높고, 몸을 쓰는 직업은 낮다는 인식이 여전히 있지 않나요? 한 엄마가 자녀의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었어요. 길 건너에서 청소하는 분을 보면서 자녀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너 공부 안하면 저런 청소부가 될 수 도 있으니까 공부 열심히 해야돼.”

기독교 역사를 봐도 중세 기독교는 노동관이 왜곡된 시대였어요. 성직자들이 하는 일은 거룩한 노동이고, 일반 신자들이 하는 일은 세속된 노동이라고 여겼어요. 그래서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을 성직자라고 부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평신도로 구분하게 된 것. 그 결과과 무엇? 신앙이 일상의 삶과 연결되지 않은 종교적인 것이 되고 만 것. 이분법적 오류에 빠지고 말았어요.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이 무엇을 외쳤습니까? 만인제사장주의를 선포했어요. ‘우리 모두가 다 제사장이다.’ 그러면서 외친 것이 무엇? 모든 일은 거룩한 일이다. 모든 일이 성직이다. 접시를 닦는 일과 설교를 하는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떠한 일도 세속적인 일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일은 모든 일은 다 성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내일 하는 일이 하나님이 부르신 성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일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아요. 그럼에도 우리는 이 관점을 가지고, (성실)한 마음으로 하십시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2절) 이 당시 로마 제국에는 많은 노예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골로새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노예였을 것입니다. 노예들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 그런데 노예 출신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는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라. 사도 바울의 이 말이 노예 출신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슨 위로가 되겠어요. 말 같지 않은 말을 하는 것 같아요. 사도 바울이 노예 제도를 지지하는 것도 아니예요.

그런데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그 기초는 바로 순종. 모든 관계, 상사와 직원의 관계의 기초는 순종. 주를 두려워하여 하라. 눈가림의 가치관에서 자유. 눈가리지 말고. 앞에서 잘하는 척하고 안보는데서는 대충. 하는 둥 마는 둥 할 것이 아니다. 상사 앞에서 속일 수 있다고 하지만 스스로 속이는 것. 주님이 보신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주님께 순종하는 자세로 정직함과 성실한 마음으로. 고용인인 사장이 월급을 주지만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기에 하나님을 보고 성실하게 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일터는 소명을 사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상사나 주인이 신뢰할만한 사람입니까? 여러분을 신뢰하고 결정권을 맡길수 있어야 합니다. 키를 맡길수 있어야. 주어진 직장에서,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절대 일터에서 일하는 시간에 성경보지 마세요. 일하는 시간에 QT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직장에서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맘.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십시오. 오늘을 성실하게 살 때 내일의 축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내가 천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인데 할수없어 백불을 받는 자리에 있다. 그러니까 백불어치만 일하는 것. 천불어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투덜 거리면서 백불어치만 일을. 대강, 적당히. 누가 그런 사람을 주목? 이 다음에 천불짜리 자리가 나도 누구하나 부르는 사람이 없는것. 백불받는 자리에서 천불의 일을 할때 사람들이 주목, 스카웃하는 것. 그러므로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일터가 복을 받아야. 그럴때 사람들은 여러분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 성실한 마음으로 하십시오.

(최고)를 드리는 마음으로 하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3절)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 저희와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배정학 장로님이 계세요. 시애틀 컨벤션 센터 1층에서 커피숍을 해요. 그 장로님의 고백이 늘 제 가슴에 남아 있어요. 손님이 오면 예수님이 오셨다고 생각을. 예수님이 오셨는데 어떻게 한 손으로 드리는가? 최선을 다해 만들어서 두 손으로 드린다는 것.

여러분, 일터에서는 일로 평가를 받는다. 맡은 일을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야. 그리고 기여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맡은 영역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겸비해야 합니다. 기억해야 할 단어는 Excellence. 최선을 다해 최고를.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인정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 누가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라. 오리를 가자고 해서 오리를 가면 감동이 없어요. 오리를 가자고 했는데 엑스트라 마일을 가면 감동이 주어지게 되는 것.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헌신적일 수 있을까, 감동을 주어 궁금증을 불러 일으켜야. 그럴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되는 것. 

일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하는 것은 월급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더 높은 지위로 승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한걸음 나아가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셨기 때문에. 주를 위하여. 교회에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드리잖아요. 이와같이 일터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남의 일처럼 여겨서는 안된다. 교회에서의 사역, 최선을 다해야죠. 주의 일이기 때문에. 마찬가지고 일터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주를 위한 주의 일이기 때문에. 저는 여러분들이 교회에서도 존경을 받지만 일터에서 더 존경 받는 사람이 되기를. 삶이 복음이 되어야. 최고를 드리는 마음으로 하십시오.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십시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 50:20) 일터에서 하는 일이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 일을 소명으로 여기라는 것. 현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가 중요. 주님께서 지금 나를 그 곳에 두신 뜻이 있다. 그러므로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해 나가는 것. 내가 이런 일이나 할 사람인가, 투덜거리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두신 분명한 뜻이 있다. 그럴때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어요. 

여러분, 불평과 원망과 어울리지 마세요. 요셉의 삶을 기억하십니까? 그는 한 순간에 사랑받는 아들에서 노예가 되었어요 노예로 팔려가 11년 동안 노예로 살아갑니다. 주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주인 집의 총무일을 맡아 일합니다.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는데 주인 아내의 유혹을 뿌리쳤고 그 일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어요. 그곳에서 2년을 보냅니다. 그 상황에서도 요셉은 똑같이 감옥에 갇힌 왕의 신하들을 돌보기 시작합니다. 섬기기 시작합니다. 자기 자신도 힘든데, 남을 생각하고 돕습니다.

그 일은 결국 어떻게? 자기 자신을 살리는 일이 되었어요. 그는 가정 총무 일을 하면서 나라 살림을 배웠어요. 감옥에서 왕의 신하를 섬기면서 나라의 정치를 배웠어요. 그런 그가 생각지도 않는 상황에서 왕 앞에 서게 되고 바로 왕이 그를 총리로 세웁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제가 놀라는 것은 30세의 나이에 히브리인이, 감옥의 죄수로 있던 그가 바로 왕에 의해서 바로 총리가 되었어요.

요셉은 불평하거나 원망하는데 시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내일을 준비. 창 41:38,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바로는 요셉을 보면서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고. 예배하는 모습이 아니라, 기도하는 모습이 아니라 일하는 모습에서. 우리가 그렇게 보여야. 그러므로 하나님을 보여 줄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세요. 기도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매일매순간 성령을 의지하세요. 성령이여, 나는 할수없지만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위로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24절)

<저 장미꽃 위에 이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