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은 이렇게 힘든 걸까요? (Why Is Work So Hard?)
창 3:17-19
시애틀 형제 교회
권준 담임목사
<주의 말씀은 내 인생의 빛입니다…>
여러분은 일주일에 몇 시간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십니까? 일주일에 몇시간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십니까? 이 질문을 하면 많은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계산을 합니까? 주일 교회에서 예배드린 시간, 순으로 모이는 소그룹 모임 시간, 성경공부 시간, 교회에서 봉사한 시간들을 계산합니다. 이 시간들은 다 더해 봐야 약 20여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일주일에 일하는 40여 시간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의 1/3을 허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내가 일터에서 일하는 시간을 주님을 위해 사는 시간이라 생각하면 우리의 생각이 달라집니다. 행동이 달라집니다. 신앙이 구현되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일터에서 우리의 신앙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크리스천들이 우리의 일터를 어떻게 생각? 일터를 사역의 장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세속적인 행위를 하는 곳으로 여겨요.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살아감으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이죠. 일터는 신앙의 가치가 실현되어야 하는 곳. 일터는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곳. 일터에서 우리의 신앙이 구현될 때 복음이 선포되고 구원받는 자가 더해지는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 일터가 너무나 중요.
하지만 교회는 성도들이 일터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일하며 신앙을 구현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 왔는가? 그동안 우리는 선교에 대해서 많이 강조해 왔어요. 가정의 중요성도 많이 강조해 왔어요. 다음세대의 중요성도 많이 강조해 왔어요. 하지만 교회가 “일과 신앙”의 이 부분에 너무 소극적이지 않았는가?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일과 신앙을 연결할 수 있을까, 일과 신앙의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이 부분을 좀 더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4주간 “일과 신앙”이란 주제로 양육강좌를 열어 팀 켈러 목사님의 “일과 영성”이란 책을 읽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내년 2026년 ‘공동체 30일’ 주제도 “일과 신앙”으로 정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준비하면서 이번에 “일과 신앙”이란 주제로 4번의 말씀을 나누게 된 것.
지난주 첫번째 시간으로, “왜 우리는 일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일이 무엇인가’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일에 대한 사고의 전환(Paradigm Shift)이 일어나야 합니다. 일에 대한 바른 관점이 필요. 관점이 인생을 결정합니다. 관점에 따라 인생이 달라져요.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새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첫째, 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Work is a GIFT from God) 하나님은 누구?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기뻐하셨어요. 그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온 세상을 사람에게 다스리도록 하셨어요. 사람을 일하는 존재로 지으셨어요. 일을 통해 기쁨과 행복을 누리도록 창조하셨어요. 그리고 첫 일터가 어디? 에덴. 에덴은 완벽한 곳. 완벽한 곳에서 일하니 얼마나 기쁘겠어요.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일은 삶의 기쁨이요 즐거움이었어요. 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일은? 금요일. 그래서 이런 단어가 나왔어요. “TGIF = Thank God It's Friday”. 금요일은 한주간의 일을 마치고 주말을 맞이하는 날. 백수가 가장 좋아하는 요일은? 월화수목금토일. 직장인이 가장 싫어하는 요일은? 월요일. 목사가 가장 좋아하는 요일은? 월요일. TGIM = Thank God It’s Monday. 제가 가장 힘들어 하는 요일은 Friday, 금요일. 금요일부터 주일 pressure가 느껴지기 시작. 주일 예배를 통해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 위로 받고 새 힘을 얻어 월요일을 맞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사명이.
이 사명을 잊지 않기 위해 제 컴퓨터에 이런 문장을 붙여 놓았어요. “Worship does not STOP on Sunday.” 우리의 예배는 일요일에 멈추지 않는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이 자리는 일주일 간의 나의 삶의 현장에서 살아간 예배의 결과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현장입니다. 그리고 다시 새 힘을 공급받고 삶의 터전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저의 사명은 우리 성도들의 삶에 Sunday와 Monday, 주일과 월요일을 연결해 주는 것. 우리 성도들이 ‘Thank God It’s Friday’하고 안식일, 주일에 새 힘을 얻고 월요일 아침에 눈을 뜰 때, ‘Thank God It’s Monday’하며 힘차게 한주간을 살아가게 하는 것. 일은 하나님의 축복이며 영광입니다. 일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둘째, 일은 하나님이 주신 소명입니다. (Work is a CALLING given by God) 일에 대한 세가지 관점이 있어요. 1. 직업, Job. 2. 경력과정, Career. 3. 소명, Calling. 직업, Job으로 보는 관점은 일을 하는 가장 큰 목적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돈을 버는데 두어요. 경력과정, Career로 보는 관점은 일을 통해 지위가 상승하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권력을 가지는데 있어요. Job과 Career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크리스천은 여기서 멈추면 안돼요. 한걸음 더 나가서 Calling, 소명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일은 단지 우리의 삶의 필요를 충족하고, 우리가 추구하는 것의 만족을 누리고, 우리를 높은 지위에 오르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일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구현하며 이웃을 돕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것이 중요. 여러분은 일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십니까?
일에 대한 관점에 따라 행복도가 달라집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하나님이 주신 의미를 찾아야. 그것이 소명의식. 아무리 단순한 일이라 할지라도, 반복적인 일이요, 단순 노동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에게 이일을 주셨다는 소명이 있어야. 그러므로 일을 통해 삶의 보람과 성취를 맛보며,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일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요, 소명입니다. 그런데 일을 생각하면 기쁘십니까? 일이 즐겁습니까? 열정이 솟아 오릅니까? 많은 경우 그렇지 못해요.
특별히 우리 이민자, 디아스포라는 일터에서 얻는 행복감이 상대적으로 낮아요. 왜냐하면 이민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 1.5세나 2세인 경우는 자기 전공을 따라 직업을 선택하죠. 하지만 이민 1세대 대부분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살아왔어요.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먹고 살아야.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어요. 그러니 일이 어떻게 행복하겠어요? 그러니까 왜 내가 이민와서 이러구 사는가? 이민오지 말 걸. 걸걸걸하며 살아요.
저희 가정이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는데, 당시 저희 아버지가 50세이셨어요. 미국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일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어요. 식당에서 일하고, 청소하고, 무슨 기쁨을 누리겠습니까? 자녀들을 위해서 이민을 택하셨고 자식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며 사셨어요. 그 수고와 땀의 열매로 제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 이제는 아버지께서 건강 문제로 교회도 나오지 못하시고 집에만 계시는만, 아버지를 뵈면 너무나 감사한 거에요.
많은 1세 부모님들이 세탁소에서 일하며, 테리야끼 식당에서 고기를 구우면서 무슨 즐거움이 있었겠습니까? 부엌에서 밥을 하며, 설겆이를 하면서 무슨 기쁨을 누리겠습니까? 하지만 밥을 지은 후에 밥주걱으로 푸기 전에 먼저 십자가를 그으면서, 이 밥을 먹는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하고. 세탁소에서 땀을 흘리며 옷을 데리면서 이 옷을 입는 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하고.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지만 소명으로 알고 일을 하셨어요.
제가 목회자가 되기로 헌신할 때는 하나님 말씀 잘 준비해서 잘 전하면 되는 줄로만 알았어요. 당회를 해야 하고, 힘든 사람 찾아가서 위로하고 달래해 하고. 그거 알았으면 목사로 헌신했겠습니까? 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한 중년의 사람이 교회에 가기 싫었어요. 연세가 많으신 어머니가 주일 아침 깨웁니다. 주일인데 교회에 가야 되지 않니? 교회가기 싫은 이유 3가지. 나도 일요일에 늦잠자고 싶다. 꼴베기 싫은 사람. 성가대에서 음이 틀리는 이상한 소리가 지겨워서. 교회 가야하는 세가지 이유. 성수주일. 사람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님, 하나님을 보러. 세번째, 너가 그 교회 담임목사이니까. 이해가 될 때가 있어요.
일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하나님의 부르신 소명이요, 축복인데 “왜 일은 이렇게 힘든 걸까요?” Why Is Work So Hard? 그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된 불순종의 (죄)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기 때문.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 3:17) 우리는 창세기 3장에서 성경의 가장 슬픈 사건을 읽습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행한 범죄의 사건. 이 사건으로 모든 인류가 죄 아래 놓이게 되었고, 삶의 고통과 땅이 저주를 받게 되었어요.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신 세계 가운데 한 곳을 구별하여 동산을 만드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신 사람, 아담과 하와를 동산에 두시고, 거기서 삶을 시작하도록 하셨어요. 그곳이 바로 에덴동산이에요. 에덴동산에 생명 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시며,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사탄은 하나님이 세운 에덴의 디자인에 대한 의심을 하와에게 갖게 합니다. 뭐라고 합니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탐욕으로 인해 속고 말았어요.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주시고 나는 피조물임을 알고 살아야 가장 행복할 수 있어요. 자신의 삶에 하나님의 (주)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도록 지음을 받았어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성품은 순종.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더라도 순종.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 그런데 자신이 최고가 되고자 했어요. 하나님의 주되심을 버리고 스스로 주가 되고,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했어요. 이것이 인류의 타락을 가져온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가 중요한 것. 예배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왕이시라는 고백의 행위. 하나님 만이 진정한 예배의 대상이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선포하는 것. 창조의 절정은 안식일에 있어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셨어요. 순종하세요. 예배가 성공해야 TGIM, Thank God, It’s Monday가 될 수 있는 것.
에덴의 축복과 영광은 인간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깨어지고 말았어요. 하나님이 세우신 모든 창조의 디자인과 세상의 샬롬이 깨어졌어요. 인간은 스스로 모든 선과 악의 결정자 행세를 하며 살게 된 것. 그러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죄는 모든 피조물의 세계에 고통을 가져다 주었어요. 사람의 관계는 미움과 갈등, 경쟁과 갈등으로 분열과 고통이 더해진 것이죠. 일을 즐거움이었는데 일터의 현장이 고통스러운 곳이 되고 말았어요. 그리고 땅이 저주를 받음으로 수고한 만큼 열매를 수확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열매를 맺어가지만 인간은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교회에서도 열심히 사역을 하지만 열매를 맺어 가기도 하지만 때로 엄청난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경험하잖아요. 사역에서도 힘들어요. 순에서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는가?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회복이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해 친히 구속사역을 시작. 인간을 불쌍히 보시고 선교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온 세상의 구속을 위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어요.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두고 이 세상에 오셨어요. 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그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자신을 비워 사람과 같이 되셨으며 인간의 저주를 대신 지셨어요. 그리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고 지금은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됨을 약속해 주셨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영원한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앞으로 임하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며 사명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나를 보내신 일터에서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뜻이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보며 신앙의 가치를 구현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기를 구하며 사명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완전한 회복은 하나님 나라에서. 아직 완전한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일에는 고통이 있어요.
그러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 있어요.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주님이 함께 하시기에 여러분의 모든 일터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에덴이 될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