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신앙4.1일터는 나의 선교지.마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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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신앙(4): 일터는 나의 선교 현장이다

(Your Workplace is your Mission Field)

마 5:13-16

시애틀 형제 교회
권준 담임목사

 

<주의 말씀은 내 인생의 빛입니다…>

오늘은 ‘일과 신앙’ 시리즈 마지막 4번째 시간으로 “일터는 나의 선교 현장이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일과 신앙’ 시리즈 말씀을 나누면서 저의 기도는 우리의 삶에 일과 신앙이 연결되기를 원해요. 일과 신앙이 조화를 이루게 되기를 원해요. Sunday 주일이, Monday 월요일로 연결이 되기를 원해요.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TGIF(Thank God It’s Friday)하고, 주일 예배를 통해 새 힘을 얻고, 월요일 아침에 눈을 뜰 때 TGIM, Thank God It’s Monday하며 힘차게 한주간을 살아가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일터에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은 (선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불순종으로 타락한 인간을 회복하시기 위해 친히 구속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백성과 언어가, 그 누구도 셀 수 없는 수많은 무리들이, 그 누구도 카운트할 수 없는 수많은 무리들이, 하나님앞에 나와 큰 소리로, 온 힘을 다해 “구원은 오직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습니다” 라고 구원의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는 것.

그래서 창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세요.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섬기던 자였어요. 하나님이 그를 죄와 우상을 섬기는 삶으로부터 부르셨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씀, 너는 고향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너의 이름을 창대케하며 너를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 그리고 사명을 주세요. “너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얻게 될 것이다.” 모든 민족이 구원함을 얻는 것. 우리가 이 사명을 향해 나가지 않으면 이 세상은 희망이 없는 것. 우리 다음 세대는 희망이 없는 것.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어요. 구속사역을 위해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선교의 (파트너)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누구? 선교사로 보냄을 받은 사람.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것처럼, 우리 또한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선교사라는 것.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IM, (I’m a Missionary) 나는 선교사다. 이 사고의 전환이 있어야. 가장 영광스러운 부르심. 그런데 ‘나는 선교사다’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선교사로서 선교적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본인들이 자각을 하지 못했을 뿐.

우리는 ‘선교’에 대해 우리 안에 굳어진 고정관념이 있어요. 선교하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해외로 파송받아 나간 사람만이 선교사라고 생각. 왜냐하면 ‘선교’를 말할때 우리는 선교의 대사명이라 일컫는 28:19-20의 말씀을 주로 나누는데 이 말씀에 대한 오해가 있어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강조? 가라는 단어. 이 단어는 교회가 선교 운동을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어요. 하지만 이 말씀에서 마태가 강조한 것은 ‘제자 삼으라.’ 제자 삼기 위해 찾아가고, 세례를 주고, 가르치라는 것. 선교는 지리적 장소와 상관없이 제자를 삼기 위해 행하는 모든 사역을 포괄하는 것.

그런데 가라에 강조를 두다보니 우리의 선교는 가는 자와 가지 않는 자들로 굳어지고 말았어요. 해외로 나간 사람만을 선교사로 여기는 것. 아마존 정글에서 선교사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과 내가 있는 일터에서 선교사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 둘 다 귀중해요. 우리 모두가 선교사라는 것.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타문화권으로, 해외로 부르시면 가세요. 그곳에 가서 선교사로 살아가는 것. 나로 이곳에 살게 하시면, 이곳이 나의 선교 현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일터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Mission field, (선교 현장)이며, (사명)의 자리입니다. 이 사고의 전환이 있어야. 일터는 나의 선교 현장이다. 우리의 일터는 보냄을 받은 자리이기 때문에 완전한 곳이 아니죠. 내가 보냄을 받은 일터는 깨어진 곳이에요. 우리를 일터로 보내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 일터의 구속과 회복. 하나님께서 그 일터의 변화를 위해 나를 보내신 것. 여러분은 일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일터를 신앙이 구현되는 선교 현장으로 생각하고 사십니까? 아니면, 돈을 벌고 나의 성공을 이루는 세속적인 행위를 하는 곳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살아감으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입니다. 나의 일터는 단지 돈을 버는 곳으로서의 현장이 아니라, 선교적 삶의 실천 공간입니다.

저의 일터는 형제교회. 26년전 하나님은 저를 부르시고 형제교회로 보내셨어요.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중요한 사명중의 하나는, 우리 성도들이 일터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일하며, 선교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러므로 일과 신앙이 연결되고, 일터에서 소금으로 빛을 발하는 선교사로 살아가는 것.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일터에 아무런 소망을 느끼지 못하십니까? 오늘의 답답한 상황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곳으로 보내셨어요. 여러분이 지금 보냄을 받은 일터가 하나님의 나라로 구속되어질 것을 꿈꾸십시오. 나의 일터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비전과 소명을 상상하십시오. 나의 일터로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가 이루어질 것을 꿈꾸며 사명을 향해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의 일터에서 하나님의 열정이 살아나게 되기를.

그러면 우리는 선교사로서 우리의 선교 현장인 일터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첫째, 우리의 일터에서 (제자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십시오. 꿈을 가지십시오. 제자란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을 따르며, 그의 비전에 헌신하는 사람. 예수님의 삶은 어떤 삶입니까?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어요.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사랑하며 사십시오. 그럴때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할 기회들이 주어지게 되는 것.

제자는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훈련에 의해서. disciple. discipline. 훈련에 의해 이루어 집니다. 말씀으로 양육되어야. 말씀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 요 1:14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말씀을 가까이 하면 예수님을 닮게 되어 있어요.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됩니다. 말씀으로 성숙해져야. 기억하십시오. “복음은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성숙에는 두가지. 예수님을 닮은 성품 플러스 실력. 복음을 전하는 실력을 쌓는 것.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복음이 무엇인지, 나눌 수 있는 실력을 쌓아야죠. 교회는 10년 20년 다녔는데 복음이 무엇인지 전할 수 있는 실력이 없다면 예수님이 얼마나 안타까워 하시겠습니까? 지난주 37기 전도폭팔훈련 수료예배가 있었어요. <사진>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인내하며 수료한 분들이 나와 간증을 하는데, 복음을 분명하게 전할 수 있게 되어 감격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1단계만 마치고 그만 두려고 했는데 다들 5단계까지 끝까지 가겠다고 고백을 하는 것. 이분들을 통해 구원받을 영혼들을 생각하니 너무 감사한 거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내시며 이렇게 명령 하셨어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으라. 여러분의 일터에서 제자도의 삶을 살아가므로 제자를 낳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둘째, 우리의 일터에서 (성육신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선교사로서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 원리는 성육신의 원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어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나리 섬기고자 내려 오셨어요. 성육신의 핵심은 섬김이요 함께 함. 사도 요한은 이 영광을 보았어요. 감동했어요.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 내려가 함께 하므로 하나됨을 이루는 것. 웃는 자들과 함께 웃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 고통을 공감하며 함께 하는 것. 다름을 수용하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연합을 이루며 세워가십시오. 일터에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 

그런데 여러분, 일터에서 성육신적 삶을 산다는 것은 가장 힘든 일일 겁니다. 왜냐하면 일터는 서로 경쟁해야 하고, 서로 누가 우월한지를 겨루는 곳이기 때문. 자기 유익만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인 환경에서 상대방의 필요와 형편을 생각하고, 인정해 주고, 상대방의 고통에 공감하며, 섬기며 하나됨을 이루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낙심할 만한 일을 만나도 하나님 나라가 임한 상상력과 소망을 잃지 마십시오. 함께 해 주고, 인정해 주고, 섬기고, 베풀 때, 성육신적 삶을 살아갈 때 감동을 먹게 됩니다. “어떻게 저렇게 헌신적일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럴때 신뢰를 얻게 될 것이고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얻게 되고 제자 삼기로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선교사로서 우리의 선교 현장인 일터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셋째, 우리의 일터에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드리며, 그 기도처럼 일합시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10)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그들이 드리는 기도와 예수님의 기도가 다름을 알았어요.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주기도문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가 임함으로 하나님의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구하며, 하나님 나라가 임함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기를 열망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라고 기도하지만 정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에게 임함으로 나의 나라가 이루어지길 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나라, 내 뜻이 이루어져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 열심히 성경공부 하면서도, 열심히 기도 하면서도, 열심히 제자훈련 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내 나라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요?

주기도문은 예배 의식중에, 또는 예배의식 말미에 마감기도 용도로 주신 기도가 아닙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일생을 통해 드렸던 기도이며, 예수님의 삶이었어요.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고, 그러므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 하셨어요. 예수님은 평생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시고자 그 기도처럼 사셨고 그 기도대로 죽으셨어요.

이 기도는 저의 평생의 기도가 되었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처럼 그렇게 기도하고 그렇게 살다가 주님 부르실 때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기를 원해요. 주님 다시 오실 때 영광중에 맞이하길 원해요. 일터에서 주님의 기도를 드리며, 그 기도처럼 일합시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택하셨어요. 왠 은혜인지요? 저와 여러분을 택하시고 선교사로 보내셨어요.

우리의 일터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받은 선교 현장이며 사명의 자리. 제자로서 사랑하며 삽시다. 성육신적 삶을 살아갑시다. 그리고 내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기를 소망하며 주님의 기도를 드리며 그 기도처럼 일하며 삽시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일터는 우리의 선교 현장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