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를 얻다(히5:1-7:28)

아티클 / 성경 주석

   예수님은 자기를 희생하심으로 인간의 죄를 영원히 없애는 데 성공하셨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히 10:12, 14).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히 7:27). 죄를 완전히 속죄한 이야기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로 종종 언급한다.

 

   죄 용서는 (우리 일터에는 전혀 시사할 게 없는) 순전히 교회의 일 또는 영적인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확정적 희생제사는 크리스천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도록 그들을 해방시켜 주겠다고 약속한다. 본문은 히브리서 10장 16절에서 용서의 윤리적인 즉, 실질적인 결과들을 강조해서 보여 준다.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다시 말해 용서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소원을 (우리 마음속에) 갖게 되며 (우리 생각 속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지혜와 비전과 능력을 받으리라는 말이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는가? 많은 사람들이 교회 활동을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옛 언약의 의식들을 대하는 것과 거의 같은 걸로 본다. 그런 사람들의 계산법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종교적인 것들에 관심을 가지시므로 우리가 하나님 편이 되고자 한다면 그런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에 가는 것이 그런 요구를 충족시키는 쉬운 방법인데, 매주 그렇게해야만 마법 효과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소위 기쁜 소식은 일단 우리가 그런 종교적 요구들을 충족시키고 나면, 하나님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자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물론 가증스런 일은 하지 않을 테지만 다음 주에 다시 교회에 나가 우리의 바구니를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채우기 전까지는 마음대로 해도 된다.

 

   그런데 히브리서는 하나님에 대한 그런 견해를 전혀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한다. 레위인 중심의 제사장 제도가 하나님 백성들의 유익을 위한 하나의 제도긴 했지만, 그것은 원래 그 자체를 뛰어넘어 장차 있을 그리스도의 확정적인 희생제사를 가리키려는 의도가 항상 있었다. 그것은 마법적인 은총의 시혜가 아니라 여정을 위한 간이 휴게였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우리를 대신해 자신을 드리셨기 때문에, 우리는 직접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진짜 죄 용서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의식을 통해 영원히 정결하게 만들려는 노력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 종교적인 활동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로 채울 필요가 있는 (또는 채울 수 있는) 바구니는 우리에게 없다. 그리스도와 그의 희생제사를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히브리서 10장 5절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말한다.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물론 이들 가운데 그 어느 것도 크리스천들이 교회를 가지 말아야 한다거나, 또는 기독교 예배에서 그런 예식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희생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우리 삶과 동떨어진 종교적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것은 주님과 우리를 새롭게 연결해 주고,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 주며, 우리의 의지를 성화시켜 주고, 그 결과 우리가 어디에 있든 그 자리에서 매일매일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해방시켜 주는 “찬송의 제사”다(히 13:15).

 

   우리는 섬김을 위해 성화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 10:7)라고 말씀하신다. 섬김은 하나님이 주시는 용서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결과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4).

 

   그러면 역설적이게도, 그리스도의 제사장다움에 초점을 맞춘 하늘의 일은 굉장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섬김으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궁극적으로는 하늘뿐 아니라 땅까지 새롭게 하기 위해(히 12:26; 계21:1) 드리신 희생제사는 여기 이 땅 위에서 효과가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가 여기서 수행하는 섬김도 매일매일의 삶에서 오는 험난한 부침(浮沈)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가셔서 우리가 현재 겪는 여정을 마치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 세상을 걸어가며 일하고 있다. 이 같은 확신 덕분에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가 그분을 위해 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또한 더욱 견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