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마 5:6

아티클 / 성경 주석

   팔복 중 네 번째 복을 이해하는 것은, 예수님이 의미하신 “의”가 무엇인지를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 준다. 고대 유대교에서 의는 ‘무죄라 선언하다, 명예가 회복되다, 올바른 관계로 회복하다’라는 뜻이었다.[12] 의인은 하나님과도 주변 사람과도 의로운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의로운 관계에 근거한 것이라면 무죄로 선언되는 것이다.
 

   의로운 관계로 가득한 사람이 받는 복을 당신은 받았는가? 그것은 세번째 팔복인 온유함에서 흘러나온다. 왜냐하면 ‘나 중심’으로 그 주위만을 맴도는 모든 행위를 멈출 때, 비로소 우리는 다른 사람과 의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하나님과, 당신의 동료와, 가족과, 공동체와 의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 목마르고 주리고 있는가? 굶주림은 살아 있음의 표식이다. 진실로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가벼운 식사로서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염두에 둘 때만 우리는 좋은 관계에 굶주리게 될 것이다. 이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다는 걸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우리가 같이 일하며 살아가는 다른 사람과도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 목말라하고 굶주려 할 것이다. 
 

   이런 굶주림을 가진 자들이 그들의 식욕을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직장에서 잘못된 것들을 보고, 그런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싸움을 하고 싶은 마음까지 나아가는 건 비교적 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행동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며, 잘못된 것이 올바르게 되는 걸 보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세상 가운데서 많은 위대한 개혁의 원천이 되어 왔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영국과 미국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한 것과 민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팔복의 흐름은 중요하다. 우리는 그런 싸움을 우리 힘으로 하지 않고, 다만 우리가 궁핍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불의를 애통해하며, 우리 힘을 하나님께 복종시켜야 한다.
 

 

David Noel Freedman, vol. 5, The Anchor Yale Bible Dictionary (New York: Doubleday, 1996), 7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