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제5권 (시 107-150편)

아티클 / 성경 주석

   시편 제5권은 시편의 다른 권들에 비해서 주제나 배경의 공통성이 적다. 하지만 일이라는 주제는 다양한 형식과 배경 가운데 시편의 다른 데서보다 더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제5권에는 경제적 창조성, 기업 윤리, 기업가 정신, 생산성, 자녀 양육과 집안 살림, 올바르게 힘 사용하기, 그리고 물질 세계에서의 하나님의 영광 등의 주제들이 모두 등장한다.

 

모든 일과 생산성을 다스리시는 분 (시 10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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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107편은 인간의 경제적 노력을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연관 짓는다.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시 107:23-31).

 

   그때도 지금처럼 사람들은 어업을 목적으로, 또는 무역을 위해 바다로 나갔다. 배는 부서지기 쉬웠고 폭풍을 사전에 알려 주는 시스템은 없었다. 삶과 생계를 날씨에 의존했다. 현대에도 고도의 기술 발전을 이룩했지만, 아직도 많은 영역에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수많은 요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놀라운 성공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서 태어났을 뿐이다.”[1] 일에서 성공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말은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나는 운이 좋았어!”

 

   믿는 사람들에게 “행운”이라는 말은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공급하심’을 설명하는 용어다. 불확실성을 내재한 일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선물인 기술과 우리의 노력에 어느 정도 달려 있지만, 그보다는 대체로 하나님의 섭리 덕분이다. 삶과 일에서 어떠한 안식처를 갈망하든 간에, 우리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찬송해야 한다(시 107:30-31). 야고보가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약 4:15)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아마도 이 시편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시편 107편 후반부에서 이와 관련한 추가적인 통찰이 등장한다.

 

또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시고 주린 자들로 말미암아 거기에 살게 하사 그들이 거주할 성읍을 준비하게 하시고 밭에 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시며 또 복을 주사 그들이 크게 번성하게 하시고 그의 가축이 감소하지 아니하게 하실지라도(시 107:35-38). 하나님은 생명이 지구에서 번성할 수 있는 환경을 창조하신다. 광야를 목초지로, 또는 목초지를 광야로 바꾸실 수 있다. 작물을 파종하고 가축을 돌보는 농업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해야 한다. 농업이 번영하는 곳에 마을이 생겨나고, 이와 함께 모든 종류의 일이 생겨난다. 도시 경제는 점점 다양해지는 사람들의 욕구에 맞춰 모든 종류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대의 지역 사회에는 농부와 목자뿐만 아니라 옹기장이, 금속 세공인, 서기관(법이나 종교 문헌뿐만 아니라 상업 계약과 거래를 위해 기록하는 자)도 필요했다. 현재든 과거든, 모든 도시 경제는 그 지역에서 생산한 것이든 무역을 통한 것이든 관계없이 풍부한 농업 생산량에 의존한다. 다시 말해, 세계의 농부들이 자급자족 수준 이상을 생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복합적인 공동체가 번영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마른 땅에 비를 주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시작한다(시 65:9; 창 2:5).

 

   따라서 시편 107편은 육지와 바다, 두 영역에서의 경제 활동을 모두 다루면서 하나님이 이 모든 영역 위에 계심을 단언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에 적대적이지 않으시다. 시편 107편은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하시고 공급하시는지 말한다. 우리의 생계는 자연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에 의존한다.

“Bill Gates Answers Most Frequently Asked Questions” (온라인 문서). 다음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download.microsoft.com/download/0/c/0/0c020894-1f95-408c-a571-1b5033c75bbc/billg_faq.doc (2010년 2월 12일).

하나님 계명을 따라 사업하기 (시 11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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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112편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계명에 따라 사업하는 사람들, 베풀고 꾸어 주는 사람들을 축복하신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라고 시편은 말한다(시 112:3, 7). 이러한 축복을 받으려면 자비, 긍휼, 의로움, 관대함 그리고 정의를 갖춰야 한다(시 112:4-5). 의로움과 정의는 그리 낮선 항목이 아니다. 사람들은 정직하고 공정한 매매를 원하므로, 일반적으로 이러한 덕목이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자비, 긍휼, 관대함은 어떤가? 자비는 우리 자신이나 회사에 가져다주는 이익은 적더라도 고객에게 비용이 더 적게 드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긍휼은 납기를 지키지 못한 공급자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관대함은 고객에게는 이득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잠재적인 경쟁자를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업체들과 설계 명세서를 공유해 우리와 함께 운용할 수 있는 제품을 제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시편 112편은 이런 덕목들이 성공을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성공으로 이끈다고 말하려는 것인가? 분명히 그렇게 보인다. 시편은 “그가 재물을 흩어 …… 주었으니”(9절)라고 말하는데, 그러나 그들은 이런 덕을 행하지 않은 자보다 더욱더 굳건하고, 안정되고, 견고하며, 궁극적으로 더욱 큰 성공을 거둔다(시 112:7-10). 이 시는 이것을 주님의 공으로 돌린다(시 112:1, 7).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개입하셨기 때문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이런 미덕이 번영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세계를 창조하시고 유지하시기 때문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둘 다일 것이다.

 

   하나님은 또한 정직한 자들에게 다른 형태의 번영을 주심으로 그들을 축복하신다. 번영에는 물론 부와 재물이 포함되지만(시 112:3), 번영의 전체적인 그림은 부보다 더 많은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을 기억하고(시 112:6)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시 112:9) 번성하는 후손(시 112:2), 안정적인 관계(시 112:6), 마음속 깊은 평화(시 112:7), 두려움 없이 미래를 맞이할 수 있는 능력(시 112:8)은 번영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모두 똑같이 중요하다. 사업에서 주님의 계명을 따를 때, 우리가 누리는 부의 정도뿐만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바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우리도 원한다면, 영원히 지속되는 행복을 발견하는 것 역시 보장되지 않겠는가?

나의 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가(시 11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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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113편은 말한다.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3절). 하루 종일 교회에 있으면서 주님을 찬양하라는 의미인가? 아니면 일과를 포함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뜻인가? 7- 9절을 통해 이는 후자를 의미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시 113:7-8).

 

   하나님께서 이것을 어떻게 이루시는지는 이 시에 나와 있지 않지만, 이 시편 기자처럼 일반적으로 일을 통해서 이루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급여가 많은 일을 하면 가난한 자는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기업에서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는 사람, 정부에서 정의를 수호하는 사람, 교육계에서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통해 이런 기회를 만드신다. 시편 113편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일으키는 것을 강조하면서 삶 전반에서 하나님을 실질적으로 찬양하라고 호소한다.

 

   핵심을 제시하기 위해 수많은 종류의 일을 언급할 수도 있겠지만, 이 시는 아이를 출산하고 가르치는 일 하나를 직접 짚어 말한다.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시 113:9). 고대 이스라엘에서 아이가 없다는 건 사실상 그 여자와 남편에게 노년의 가난을 선고하는 것이다. 물론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어찌 됐든 여기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먼저 부모가 자녀를 낳고, 먹이고, 씻기고, 보호하고, 놀아 주고, 가르치고, 지도하며, 용서하고, 훈련시키고, 사랑하는 것이 명백한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어머니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아무도, 심지어 교회조차도, 그 일이 경제적으로 엄청난 소득을 내는 일만큼 가치 있는 일임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말이다.

 

   두 번째로 자녀가 없는 성인과 보호자가 없는 아이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구제는 거의 항상 다른 사람들의 일을 통해 이루어진다. 의료 전문가들은 생식 능력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입양 전문가와 아동 복지가들은 부모가 되고 싶은 사람과 부모가 필요한 아이를 연결시켜 주고, 가정에 필요한 훈련과 감독을 제공할 수 있다. 모든 가정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포함해 넓은 지역 사회에 있는 다른 사람의 지원에 의존한다. 가족의 일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이 장의 “시 127, 128, 139편” 부분을 보라.

 

 

진정한 가치를 창조하고 있는가 (시 12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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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107편이 대규모 경제 활동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시편 127편과 128편은 산업혁명 전까지 경제 생산의 기본 단위였던 가정에 대해 말한다. 시편 127편은 모든 좋은 일은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시작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1-2).

 

   “집”과 “성” 모두, 주민을 위해 재화와 안전을 제공한다. 궁극적으로 모든 경제 활동의 목적은 가정을 번영하게 하는 것이다. 이 구절은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지런한 노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단언한다(게으름에 관해 말하는 잠언 26장 13-16절과 비교하라). 여기에는 또렷이 보이는 요점 뒤에 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열심히 일함으로써 더 크고 아름다운 집을 얻을 수는 있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는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모든 것을 가치 있게 만드실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경제에서 농업 이외의 일은 일반적으로 가정이 아닌 더 큰 조직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127편의 메시지는 고대 가정에 적용한 것처럼 오늘날의 제도화된 직장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모든 일터는 번영하기 위해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창출해야 한다. 시간 투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일은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창출해야 한다.

 

   믿는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특별히 의미 있는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다. 모든 일터에서는 지속적인 가치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상품을 생산하고자 하는 유혹이 존재한다. 기업은 재료의 품질을 낮춤으로써 단기간에 수익을 증가시킬 수 있다. 영업 판매원은 구매자가 제품 관련 지식이 부족한 점을 이용해 미심쩍은 제품과 부대용품을 판매할 수 있다. 교육기관은 지속적인 역량 개발 없이 학생들을 유인하는 강의를 열 수도 있다. 이외에도 예는 무수히 많다. 우리의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진정한 필요를 이해하면 할수록, 그리고 우리가 생산하는 것의 진정한 가치 창출에 기여하면 할수록, 우리는 우리가 일하는 기관이 이러한 유혹에 저항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진정한 가치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겸손해야 하고, 끊임없이 경청해야 한다. 섣부른 의견을 계속 소리 높여 말해 사람들이 내 말을 듣는 데 지쳐 버리면, 결국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가정의 일은 영예로운 것 (시 127, 128, 13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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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자녀 출산, 부모 봉양 등의 일은 시편 127, 128, 139편 전면에 다시 나타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시 128:3). 자녀 출산의 일은 시편 113편에서도 중요하게 다룬다. 이 장의 “시 113편” 부분을 보라.

 

   남편과 아내는 가장 기본적인 유형의 생산인 재생산에 함께 참여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과정에서 아내가 남편보다 더 많은 노동을 한다. 성경에서는 이 일을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다 보았고,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명예롭게 여겼다. 자녀 출산 외에도 아내들은 일반적으로 가내 생산과 상업적 생산을 모두 포함한 집안일을 관리했다(잠 31:10-31).

 

   성경은 바다로 나가는 자와 양치는 목자(전통적인 남성 직업)뿐만 아니라 집안일을 관리하는 자(전통적인 여성 직업)도 영예롭게 여겼다. 여성이 주체가 되는 가정을 돌보는 일을 제외하고는[1] 오늘날에는 일의 역할을 예전만큼 성에 따라 엄격히 나누지 않는다. 하지만 결혼과 가정의 일은 여전히 영예로운 것으로 본다.

 

   모든 형태의 일과 같이 자녀 출산도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물론 자녀를 출산하는 것도 일이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시 139:13). 다른 모든 형태의 노동과 마찬가지로, 고통이 닥쳤을 때 이것이 하나님의 징벌이나 하나님께 버림받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출산은 전 세계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일반 은총의 핵심이다. 하나님은 목적이 있으셔서 어머니의 자궁에서 우리를 만드셨다. 우리의 생득권은 하나님께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시편 127편으로 돌아가 이 주제의 마지막 요소를 살펴보자. 나이가 들어 일할 능력이 줄어든 부모를 봉양하는 일도 가정의 일이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 고대에는 연금제도나 건강보험이 없었다. 늙은 부모의 부양 책임은 자연스레 아들의 몫이었다. (일반적으로 딸들은 결혼하면 남편의 가족에 편입되기 때문에 본문은 “아들들”이라고 말한다.) 사실 아들들이 부모의 노후 대책이었고, 이것이 세대 사이를 가깝게 만들었다.

 

   자녀 양육의 가치를 경제적인 면에서 따지는 일이 좀 냉혹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자녀 양육의 감정적 보상의 측면에서 말하는 것을 더 편안하게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은 아이가 어른을 필요로 하는 것만큼이나 어른도 아이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은 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임을 가르쳐 준다. 이 구절은 또한 부모님이 우리에게 감정적, 신체적, 지적, 창의적, 경제적, 기타 많은 형태의 투자를 했음을 상기시켜 준다. 장성한 자녀가 늙은 부모를 돌보는 일은 옳다. 여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핵심은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는 하나님의 계명이 태도뿐 아니라 일과 경제적인 돌봄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Man Yee Kan, Oriel Sullivan, and Jonathan Gershuny, “Gender Convergence in Domestic Work: Discerning the Effects of Interactional and Institutional Barriers from Large-scale Data,” Sociology 45, no. 2 (April 2011), 234-251쪽.

힘, 올바르게 쓰라 (시 13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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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일에 힘은 반드시 필요하며, 또한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시편 136편은 하나님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시는지에 관한 네 가지 예를 보여 주면서, 힘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법을 알려 준다.

 

   첫 번째 예는 4-9절이다. 성경은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 ……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시 136:5-6)라고 언급하며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능력을 사용하시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창세기 1장에서 우리가 번영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 세상에 주시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일하신 순서를 보자. 첫 번째 창조하신 체계(땅, 물, 밤, 낮, 해, 달)는 후에 창조할 창조물들(식물, 땅의 짐승, 헤엄치고 날아다니는 생물들)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하나님은 동물의 생존에 필요한 마른 땅과 초목이 있기 전까지 동물을 창조하지 않으셨다. 우리에게 업무나 체계를 만드는 권한이 주어질 때, 우리와 우리 주위 사람들이 단순히 생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번성하게 하는 환경을 만듦으로써 그 힘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 창조에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더 알고 싶다면, 이 시리즈 1권 《일하는 크리스천을 위한 모세오경 · 역사서》 1장의 “창 1:29-30; 2:8-14” 부분을 보라.

 

   두 번째 예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애굽 노예 생활에서 구원하셨을 때를 그리는 시편 136편 10-15절에 나온다. 바로 이어지는 세 번째 예는, 약속의 땅에 정착하기 위해 여행하는 이스라엘에 대적한 가나안 왕들을 하나님이 멸하시는 내용이다(시 136:16-22). 이 두 가지 예 모두, 사람들을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선한 일을 방해하는 자들에 대항하기 위해 하나님이 능력을 사용하심을 보여 준다. 우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각자의 소명을 실현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힘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 근로자들을 다시 노예로 만들거나 또는 그들이 하나님의 일에 반하는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가 힘을 남용하는 것이다.

 

   네 번째 예는 이 시의 끝에 나온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23-25).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사랑으로 보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신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일을 하기 위해 힘을 사용할 때, 하나님 방식대로 우리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힘의 올바른 사용과 관련해 시편 136편의 모든 구절은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상기시킨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시 146-15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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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의 마지막 다섯 편의 시는 각각 “할렐루야!”(여호와를 찬양하라!)라는 외침으로 시작한다. 일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나의 형태다. 이 다섯 편의 시들은 우리가 일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묘사한다. 그 모든 방법 속에서 우리의 일은 하나님의 일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일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따라하고 확장시키며 성취한다.

 

시편 14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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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억눌린 자들을 위해 정의를 행하신다(시 146:7a). 하나님 계명에 따라 일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도 정의 실행에 동참할 수 있다. 하나님은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시 146:7b). 우리 역시 그렇게 한다.

 

   입법자, 변호사, 판사, 배심원들이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속박된 자들을 해방시키신다. 안과의사, 안경사, 안경 제작자가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의 시력을 회복시키신다. 물리치료사, 위생병, 젖먹이를 둔 부모가 하는 것처럼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사람들을 일으키신다(시 146:8). 경찰, 안전요원, 비행기 승무원, 인명구조원, 위생 검사관, 평화유지군이 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지키고 보살피신다. 양부모, 노인복지 종사자, 가정 고문변호사, 사회복지사, 재무설계사들이 하는 것처럼 고아와 과부를 돌보신다(시 146:9). 여호와를 찬양하라!(시 146:10)

 

시편 14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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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옥에서 일하는 교사, 지역 사회 조직가가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흩어진 자들을 모으신다(시 147:2). 상담사, 작가, 음악가가 하는 것처럼 상심한 자들을 치유하신다(시 147:3). 천문학자, 항해사, 이야기꾼이 하는 것처럼 별을 세시고 이름을 지어 주신다(시 147:4).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시다(시 147:5a). 교수, 시인, 화가, 기계 기술자, 수중음파탐지기 조작자, 세부적인 것에 집중하는 놀라운 힘을 가진 자폐증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는 심오한 지혜가 가득하다(시 147:5b). 인권운동가와 기부자들처럼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을 높이 세우시고, 지방 검사, 내부고발자, 험담을 멀리하고 부당한 취급을 받는 동료를 강력히 변호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악한 자의 힘을 꺾으신다(시 147:6).

 

   기상학자, 기후연구원, 건축가와 건설업자, 항공교통관제사가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다가오는 날씨에 대비해 이 땅을 준비시키신다(시 147:8). 목장주, 목자들이 하는 것처럼 동물들을 먹이신다(시 147:9). 엔지니어, 군인, 관세사, 외교관이 하는 것처럼 성문을 견고히 하시고, 어린이들을 보호하시고, 국경에서 평화를 지켜 주신다(시 147:13-14a). 요리사, 주방장, 제빵사, 농부, 전업주부와 맞벌이 가정, 조리법을 올리는 블로거, 식료품 상인, 식료를 나르는 트럭 운전사, 식당 직원이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훌륭한 음식을 준비하신다(시 147:14b). 하나님은 율법과 규례를 포함한 말씀을 선포하신다(시 147:19). 여호와를 찬양하라!(시 147:20)

 

시편 14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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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146, 147, 149편과는 달리, 148편과 150편은 일하시는 하나님을 묘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미 하신 일에 대해 우리가 찬양으로 응답하는 내용으로 바로 건너뛴다.

 

   시편 148편은 마치 피조물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찬양인 것처럼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해 말한다.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그의 말씀을 따르는 광풍이며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시148:7-10) 하나님의 창조로 인해 우리 일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주님에 대한 찬양으로 바치는 것은 당연하다. “총각과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시148:12-13a). 여호와를 찬양하라!(시148:14).

 

 

시편 14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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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가, 댄서, 작곡가, 안무가, 교사, 예술단체 직원과 기부자, 성가대원, 음악치료사, 스쿨밴드 멤버, 합창단과 관현악단, 아마추어 밴드, 가수, 직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근로자, 음반 프로듀서와 제작자, 유튜버(YouTubers: 직접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 사이트에 올려서 공유하는 사람들 - 옮긴이 주), 힙합 디제이, 작사가, 오디오 제조업자, 피아노 조율사, 음향 전문가, 음악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샤워하면서 노래 부르는 모든 사람들처럼 여호와께서는 노래, 춤, 악기의 음악을 즐거워하신다(시 149:2-3). 음악을 만드는 것처럼 보편적인 동시에 다양성을 띠는 형태의 인간 행위가 어디 있는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음악을 사랑하시는 데서 비롯된다.

 

   모든 좋은 지도자, 정신건강 분야 종사자, 목사, 판매원, 관광 가이드, 코치, 파티 기획자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신다(시 149:4a). 만일 사람들을 억압하는 상황이 발생하거나 타인에게서 건강한 기쁨을 얻을 수 없는 체제가 존재한다면, 여호와께서는 억압하는 자를 물리치시고 체제를 개혁하신다(시 149:4b-9a). 사회 및 기업 개혁가, 언론인, 현 상황의 수용을 거부하는 평범한 여성과 남성, 조직심리학자와 인적자원 전문가, 그리고 상황이 극단적이어서 다른 방법이 없을 때 육군, 해군, 공군과 그들의 지휘관들이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정의와 올바른 통치가 회복될 때, 음악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시 149:6). 여호와를 찬양하라!(시 149:9b)

 

시편 150편 및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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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시는 우리의 모든 활동과 일의 기반이 되는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에 대한 우리의 응답으로써, 다시 음악을 이야기한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시 150:3-5).

 

   다섯 편 노래의 절정이면서 전체 시편 모음을 최종적으로 끝맺는 시편 150편은 음악이 실로 중요한 일이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음악은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크게 주를 찬양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우리는 이것을 문자 그대로도 비유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문자 그대로 본다면, 우리가 음악, 춤, 다른 형태의 예술을 기독교 공동체의 관례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기독교 공동체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음악만을 수용하며, 그 외 형태의 예술은 거의 포용하지 않는다. 아니면 적어도 우리는 우리의 음악과 예술을 더 높게 여기는 것일 수도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예술적 창조성을 표현할 시간을 가질 수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불어넣어 주신 노래들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비유적으로 보자면, 시편 150편은 일이 마치 음악인 것처럼 여기도록 우리를 이끈다. 우리는 관계 안에서의 조화와 일과 휴식의 안정적인 리듬을 추구하고, 우리가 하는 일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눈여겨보면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일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면, 도덕적 유혹, 지루함, 나쁜 관계들, 좌절, 낮은 생산성 등의 난제들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예를 들면, 상사에 대한 불만이 쌓여서 더 이상 맡은 일을 잘하고 싶지 않다고 느끼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만약 당신이 상사와의 관계를 넘어서서 일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면,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이 일함으로써 세상의 어떤 부분이 아름다워지는가? 당신이 하는 일에서 하나님은 어떤 아름다움을 보실까? 그것은 힘든 시간을 겪을 때 당신을 지탱하기에 충분한가? 또는 당신이 하는 일이나 방법에서 필요한 변화를 이끌기에 충분한가?

 

   ◦  결론

   우리가 자신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하나님은 어떤 경우든 그 일이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150편의 시편들은 가장 어두운 두려움부터 가장 밝은 희망까지 우리 삶과 일에서의 모든 측면을 다룬다. 어떤 시는 죽음과 절망을, 어떤 시는 번영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시편의 최종 결론은 찬양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시 1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