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 에베소서 · 빌립보서 서론

아티클 / 성경 주석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는 신약의 바울 서신서 가운데 길이는 짧지만 내용은 풍성한 책들이다. 세 권 모두 간결한 서신이기 때문에 일의 신학에 대한 이들의 가르침을 한데 묶어 다루었다. 그러나 세 서신서는 각각 독특한 주제를 담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 각각을 개별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갈라디아서 개요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갈 5:13). 

 

   우리는 신자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구세주로 믿을 때 크리스천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라면, 일을 포함한 일상에서 이 믿음을 어떻게 표현해 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특정 기본 규칙에 맞춰 행하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직장의 경우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은 행동 목록을 정해 놓을 수 있다. (1) 동료들을 존중한다. (2) 부적절한 언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3) 남의 험담을 하지 않는다. (4) 의사결정을 할 때는 성경적 가치관을 따른다. (5) 가능한 그리스도의 신앙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목록은 더 늘어날 수 있으며, 그때 성경적 우선순위를 반영한 소중한 지침을 담아야 한다.

 

  그러나 직장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이런 목록에는 위험이 따른다. 크리스천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자유로운 반응이어야 하고, 더불어 그리스도에 중심을 둔 관계여야 한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목록’에 지나치게 얽매이다 보면 자칫 율법주의에 빠질 수 있다. 게다가 크리스천의 삶을 율법주의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그 목록에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추가하는 경우가 많다.

 

바울과 갈라디아 성도들

   AD 1세기 중반 갈라디아 교인들 사이에서 바로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갈라디아 교인은 해야 할 행위와 하지 말아야 할 행위의 목록에 따라 삶의 방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 부르며 당시 특정학파가 해석하는 방식대로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이라고 주장하던 외부인들에게 영향을 받아서였다. 특히 이 ‘유대주의자들’은 할례(갈 5:2-12)와 의식법(갈 4:10) 문제에서 유대인처럼 살아야 한다고 갈라디아 교인들을 설득했다.

 

  바울은 갈라디아의 크리스천들을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기 위해 우리가 갈라디아서라고 부르는 이 서신을 썼다. 바울은 직장과 관련된 문제를 직접 다루지는 않지만, 크리스천 삶의 본질에 대한 바울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우리의 신앙과 일에 관해 예리하게 말한다. 더욱이 갈라디아서는 일과 연관된 이미지, 특히 1세기 노예제도 관습에서 비롯된 모습을 포함한다. 바울에 따르면 크리스천들은 모세의 율법이나 이 땅의 다른 힘 아래에서 종 노릇하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야만 한다(갈 4:1-11).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행사하는 자들은 사랑을 통해 “서로 종 노릇”(갈 5:13) 하기로 작정해야 한다.

 

  성경학자들은 갈라디아서의 저자는 바울이며, 이 서신이 AD 49년에서 58년 사이 오늘날의 터키 중부 지방에 해당하는 로마제국의 갈라디아 지방 교회들에 이 서신을 썼다는 데 거의 만장일치로 의견을 같이한다.[1]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를 통해 개척한 교회들에게 편지를 쓴다. 이 교회들은 문화적 · 종교적으로 다양한 환경 가운데 존재했고, 특히 최근에는 유대주의자, 즉 모든 크리스천들이 온전한 크리스천의 삶을 경험하고 싶다면 모든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인 크리스천들의 영향을 받은 상태였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변질시키고 있던 유대주의자들과 갈라디아 교인들의 주장에 맞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한 자유를 강조했다. 이를 직장에 적용해 보면, 갈라디아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필수적인 자유를 가지고 우리가 일을 이해하고 그 일에 종사하도록 도움을 준다.

 

에베소서 개요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엡 4:1). 

 

   총체적인 관점에서 우리 일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일은 그저 생계를 꾸려 나가는 데 필요한 활동인가? 아니면 의미와 치유, 개인적 통합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한가?[2] 하나님의 우주 창조속에서 우리 일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우리 일이 그리스도의 세상 구속 사역과 병행하는 무언가를 의미하는가?

 

   에베소서는 창세 전에 시작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안에서 계속되었으며 현재의 이 순간과 그 너머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장엄한 사역을 다룬다. 에베소서는 우리를 경외감에 사로잡힌 관찰자로서, 동시에 하나님 사역의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이 장엄한 계획에 끌어들인다.

 

  따라서 에베소서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준다. 우리의 삶, 우리의 행동, 그리고 실로 우리의 일은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셨던 일과 지금도 행하고 계신 일 때문에 다르게 살고, 다르게 예배하며, 다르게 일한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반응하기 위해 또 그분의 일하심에 동참하라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우리는 삶에서 직업을 포함한 맡은 바 모든 일을 해 나간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세상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하라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엡 4:1).

 

  우리가 에베소서라고 알고 있는 본 서신은 사도 바울이 쓴 신약의 다른 서신들과는 유사하기도 하고 동시에 다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골로새서와 가장 유사한데, 두 서신은 주제와 구조, 심지어는 문장까지 비슷하다(엡 6:21-22; 골 4:7-8). 이 책의 5장을 보라.

  
   에베소서는 빼어난 문체, 독특한 어휘들, 그리고 특유의 신학적 관점 등에서 다른 바울 서신들과 차별화된다. 더 나아가 에베소서는 바울의 다른 서신들에 비해 특정 교회의 특정 상황을 다루는 경향이 훨씬 덜하다.[3] 본 해설에서는 저자가 바울이라는 전제하에 내용을 전개한다.

 

  에베소서는 특정 회중의 필요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우주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일을 광대한 신학적 관점과, 그 사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담당하는 핵심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각 개별신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존재로서(엡 2:10), 그리고 교회의 성장과 사역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로서(엡 4:15-16), 하나님의 일에 기여한다.

 

빌립보서 개요

   일은 노력을 요구한다. 장사를 하든, 트럭을 운전하든, 아이를 키우든, 글을 쓰든, 신발을 팔든, 아니면 장애인이나 노인들을 돌보든, 우리가 하는 일은 저마다 노력해야 가능하다. 아침에 일어나지 않고 출근하지 않으면 일을 마무리할 수 없다. 매일 아침 당신을 침대에서 일어나게 해 주는 동기는 무엇인가? 하루 종일을 버텨 나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당신이 맡은 일을 충성스럽게, 나아가 탁월하게까지 해내게 하는 에너지원은 무엇인가?

 

  매우 다양한 답들이 나올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경제적 필요 때문에 일을 한다. “저는 돈이 필요해서 매일 일어나 일하러 갑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저 자기 일이 좋아서 일한다. “제가 일하는 이유는 제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죠.” 또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시시콜콜한 대답을 할 수도 있다. “저를 깨워서 하루 종일 견디게 해 주는 게 뭐냐고요? 바로 카페인이죠!”
 

  빌립보 크리스천들에게 보낸 바울의 서신은 우리가 일을 하는데 힘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종류의 대답을 제시해 준다. 바울은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 자신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며, 우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직업을 포함해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하는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한 표현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이런 노력을 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사람들을 섬기는 일이며(막 10:35), 하나님께서는 그분과 함께 섬김의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부어 주신다.

 

  우리가 빌립보서라고 알고 있는 이 서신을 사도 바울이 대략 AD 54년에서 62년 사이에 기록했다는 데 거의 모든 학자들이 견해를 같이한다.[4] 몇 번의 투옥기간 중(빌 1:7) 어느 때에 이 서신을 기록했다는 것은 알지만, 기록 장소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5]

 

바울이 초기 선교 여행에서(빌 1:5; 행 16:11-40) 자신이 세운 공동체인 빌립보 교회에 이 개인적 서신을 써 보낸 것은 확실하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자신의 최근 소식을 알려주며, 자신의 사역을 후원해 준 일에 감사를 표하고, 신앙을 위협하는 많은 일들에 그들이 대항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며, 그들이 서로 더 잘 지내도록 돕고, 전반적으로는 빌립보 교인들이 자신의 믿음을 살아 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 서신을 썼다.


   빌립보서는 ‘일’(work; 헬라어로 ergon과 cognates)이라는 단어를 몇차례 사용한다(빌 1:6; 2:12-13, 30; 4:3).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인간의 과업을 묘사하기 위해 그 단어를 사용한다. 그는 세상 일터와 관련된 문제들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바울이 말하는 일과 관련한 내용은 여기에 요긴하게 적용할 수 있다.

 

Richard N. Longenecker, Galatians The Word Biblical Com  mentary (Waco: Word, 1990), lxxiii–lxxxvii를 보라.

예를 들어 Dan P. McAdams, The Redemptive Self: Stories Ameri  cans Live B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Donald E. Polkinghorne, Narrative Knowing and the Human Sciences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1988)를 보라.

이 쟁점들과 그들이 시사하는 바를 논의한 내용은 Andrew T. Lin  coln, Ephesians, Word 
Biblical Commentary (Nashville: Thomas Nelson, 1990), xlvii–lxxiv. 앤드류 T. 링컨, 《WBC 에베소서》(솔로몬 역간); Gerald F. Hawthorne, Ralph P. Martin, and Daniel G. Reid, eds., “4.3. Place and Date” of “Philippians, Letter to the,” Dictionary of Paul and His Letter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3)를 보라.

 Gerald F. Hawthorne, Philippians, rev. and exp. by Ralph P. Martin, The Word Biblical Commentary (Nashville: Thomas Nelson, 2004), xxvii–xxix, xxxix–l.

 Gerald F. Hawthorne, Ralph P. Martin, and Daniel G. Reid, eds., “4.3. Place and Date” of “Philippians, Letter to the,” Dictionary of Paul and His Letter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3)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