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 신학의 초기 형태가 얼굴을 드러내다 (삿17장)

아티클 / 성경 주석

   사사기의 중심 부분이 압제와 구원의 사이클에 갇혀 절망하는, 결함 있는 영웅들을 우리에게 제시한다면, 17장부터 21장까지의 마지막 부분들은 구속의 희망이 전혀 없어 보이는 것 같은 타락한 백성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사사기 17장은 우상숭배 패러디로 시작한다. ‘미가’라는 사람이 돈이 많아서 그의 모친이 그 돈으로 우상을 만들고, 미가는 프리랜서 레위인을 자기 개인 제사장으로 고용한다. 미가가 집에서 키워 온 값싸고 번지르르한 신흥종교가 구제불능 신학(abysmal theology)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건 놀랍지 않다.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삿 17:13). 다시 말하면, 자신의 우상숭배 사업에 종교적 권위를 갖게 됨으로써 미가는 자신이 갈망하는 좋은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하나님을 제멋대로 써도 된다고 믿은 것이다. 인간의 창의성이 여기서는 최악의 방법으로 낭비되고 있다. 탐욕과 교만을 가리기 위해 신을 만드는 데 쓰이니 말이다.

 

   하나님을 ‘번영하게 해 주는 기계’로 둔갑시키고 싶어 하는 충동이 없었던 시절이 없다. 오늘날에는 소위 ‘번영(형통)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부와 건강과 행복을 반드시 보상받는다고 선동한다. 일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번영 신학은 하나님께서 소나기처럼 퍼부으시는 부요함의 단비를 내려 주길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일을 방치하게 만들고, 방탕에 빠지게 한다. 이것은 가족과 공동체를 태만히 대하게 만들고, 동료들을 학대하게 하며, 사업을 비윤리적으로 하게 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으므로 자신은 일반인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에서는 예외라고 확신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