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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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의의 거짓말"은 대화를 부드럽게 하거나 사소한 언쟁을 모면하고자 하는 거짓말로 그 누구에게도 거의 해를 끼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회의에 지각을 한 경우, 우리는 "차가 너무 막혔어요..." 혹은 "꼭 받아야 하는 전화가 갑자기 걸려왔어요."와 같이 자신의 체면을 살리는 변명을 만들어내고 싶은 충동을 종종 느낀다. 또한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동료에게 당신이 지금 사무실에 없다거나 회의 중이라고 말해달라고 하는 상황도 아주 흔하게 일어난다. 또 다른 종류의 선의의 거짓말은 다음과 같다. "내 친한 친구를 소개할게." (그 동료를 실제로는 별로 안 좋아하면서도), "굉장히 현명하십니다." (어리석음이 명백히 보이는 고객에게), "내가 전화할게" (실제로는 전화할 생각이 전혀 없을 때) 등등.

 

   선의의 거짓말은 악의가 없어 보이는 거짓말이기 때문에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취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들에 잘 대처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만약 회의에 늦는다면, 그냥 간단히 “죄송합니다. 일이 좀 생겨서요."라고 말하고 넘기면 된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었는지 꼭 알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이렇게 애매하게 넘어가는 것이 선의의 거짓말보다 낫다. 둘 다 악의는 없더라도 말이다. 이와 비슷하게,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은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다른 사람을 통해 전달하면 된다. 당신과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사람이 어떤 상황 때문에 당신이 이야기를 할 수 없는지 자세히 알 필요는 없다. 또한 당신에게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야 할 의무도 없다. 혹은 그 사람과 직접 대면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냥 이렇게 이야기하면 된다. "지금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보면 좋겠네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자세한 설명을 덧붙일 의무는 없다. 불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반드시 속임수라고 할 수는 없으며, 이유를 솔직하게 다 털어놓지 않는다고 해서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싶은 상황들 중에는 우리가 정직함을 보여야 하는 상황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뒤, 여러분의 평가를 물어보았다고 생각해보자. 이에 대해 "아주 좋았어요. 마음에 들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쉽고도 효율적인 대답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실제로 프레젠테이션이 별로였을 경우 그 사람에게 유용하고 건설적인 피드백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따라서 칭찬할 부분은 칭찬해주면서 부족했던 부분도 지적해주어서 그 사람이 다음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개선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떠한 유형의 속임수들은 비교적 가벼운 것이기 때문에 용인된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도 있다. 여러분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해 고용주에게 거짓된 정보를 준다든지, 혹은 비용계정을 부풀리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우리가 이러한 거짓말은 흔하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킨다면, 특히 이러한 속임수의 유혹에 취약해질 수 있다. 혹은 우리가 겪는 부당함에 대한 보상으로서 이러한 속임수를 정당화하고자 할 수도 있다. "나는 더 많은 몫의 팁을 받을 자격이 있어. 하지만 동료 팻처럼 상사와 부적절한 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에 제 몫을 못 받고 있어. 그러니까 나는 현금입출금기에서 돈을 조금 꺼내서 그걸로 보충해야지." 이러한 것은 선의의 거짓말이나 과대광고와 같은 수준을 명백히 넘어선 것이다. 이는 의심하지 않는 상대방을 속이는 것이며, 그 상대가 속지 않는 이상 얻을 방도가 없는 개인적 이득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속임수는 기독교적 윤리와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