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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17장 본문의 신학은 개인 관계의 강조로 가득하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 너희를 친구라” 하시며 제자들을 부르신다(요 15:15). 제자들은 예수님을 위해 일을 하지만, 우정과 동료 간 협력 정신으로 임했다. ‘가족기업’(Family Business)이라는 용어가 담고 있는 의미에 딱 맞다. 예수님은 혼자서 일하시지 않기 때문에 그분의 일과 관계는 얽혀 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요 14:10-11). 제자들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이겨 내라고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요 14:18). 성령을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하시며,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제자들도 할 것이다(요 14:12).
얼핏 보기보다 심오한 가르침이다. 이것은 단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그분을 따르던 제자들과 친구들이 기도 속에서 예수님을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 간의 사랑 관계의 연료인 세상의 창조 · 회복 사역에 그들 역시 적극적인 참가자임을 뜻한다.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일을 수행하고 그 부자간의 (성령 하나님은 조금 뒤에서 다룬다) 친밀한 사랑에 동참하게 된다. 아버지 하나님은 세상을 형성하고 재창조하는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게 함으로써 아들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신다.[1] 요 3:35; 5:19-20 참조.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5)라는 진술은 구체적으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 나누셨던 영광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은 요한복음 1장 1-3절에 나오는 최초의 창조에 그리스도가 포함되기에 딱 맞는 구도를 형성한다.
사랑에 동참하라는 부르심은 일에 동참하라는 부르심과 떼려야 뗄수 없는 관계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요 17:23) 해 달라는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요 17:18)로 응답되고, 그로부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내 양을 먹이라”(요 21:17)라는 말씀이 나오는 것이다.
인간 노동의 핵심적인 측면은 공동 과제를 수행함으로써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많은 사람에게 직장이란 개인과 관계라는 측면으로 볼 때 가정을 제외하면 밖에서 가장 중요한 상황을 제공하는 곳이다. 혼자 일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일터가 자신의 집 안이든 밖이든, 공급 업체, 고객 등의 인간관계로 얽혀 있게 마련이다.[2]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는 “The Tuft of Flowers”라는 시에서 “‘인간들은 같이 일해야 해’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말했지, ‘그들이 같이 하든 따로 하든 간에’ ”라고 멋지게 표현했다. Robert Frost, A Boy’s Will (New York: Henry Holt, 1915), 49쪽.
자기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영적이지 못하다고 여겨 꺼려 하는 프로젝트 중심적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위로와 격려가 아닐 수 없다.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관계를 키워 나가기 위해서는 일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함께하는 일은 그 자체로도 관계를 쌓을 수 있다. 누군가와 함께,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삼위일체 안에서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모델로 삼아, 우리는 일터에서의 관계를 배울 수 있다. 공통의 목표를 향해 일해 나가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화합하게 하시고 가장 인간답게 만드시는 주된 방법 중 하나다.
성경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