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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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에서 특정의 역할을 한다. 성경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일의 세 가지 기본 목적은 1)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 2)청지기 사명을 다하는 것, 그리고 3)정의와 사랑을 도모하는 것에 있다. 이에 대해 곧 간단히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는 먼저 금융이 인간 세상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죄의 깊고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러 상황에서의 탐욕과 부정은 금융을 타락시키며, 이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영광, 인간의 청지기 사명, 정의, 그리고 사랑의 실천을 해친다. 죄의 영향에 대해서는 이후에 좀 더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우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향해 가지셨던 본래의 목적에 따라 금융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통해 무엇이 가능할 것인지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금융은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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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적 서사에서 우리가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당신의 영광과 존귀를 위해 창조하셨다(골1:16, 계4:11). 다른 창조물과 마찬가지로 금융의 토대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창조성을 드러낸다. 하나님께서는 계절, 해, 일생 등의 시간을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풍부한 사회 교류가 이뤄지는 공동체 속에서 살면서 번창하고자 하는 갈망과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를 서로서로 긴밀한 관계로 맺어두셨다. 시간에 따라 자원을 공유하는 것은 그러한 사회교류의 한 예이다. 사람들이 사회적인 네트워크 속에서 특정 기간 동안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풍부한 창조물을 취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창조성과 사랑을 통해 그 창조물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마치 위대한 음악이나 맛있는 음식처럼, 금융은 하나님의 창조 속 그분의 전능하심과 창조력을 나타냄으로써 주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금융과 관련된 8개의 구체적인 토대를 마련하셨다는 것을 살펴보는 다음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선한 청지기가 되라는 창조 명령을 이행할 수 있도록 돕는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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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지기 사명은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다스리며) 경작하고 지키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다(창1:28~30, 2:15).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세상의 모습은 동식물이 가득하고 하나님과 완벽한 교감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동산의 모습으로 창세기에서 그려진다. 그 동산은 훌륭했지만 영원히 변치 않도록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창조가 실현되는 모습이 예견되는 장면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든 나라의 사람들로 충만한 세계가 그려진다. 이들은 더 이상 어느 동산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초석, 성곽, 문, 나무가 심어진 거리, 철, 금, 가축과 상인들의 배가 있는 도시에서 산다. 이렇게 동산에서 사람과 문화적 요소가 가득한 도시로 창조물을 발전시키는 것이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 경작하고, 지키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의 결말이다. 처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 또한 완벽하고 자원으로 가득했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완성된 것은 아직 아니었다. 마우(Mouw)는 이렇게 주장한다.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인간이 이 땅을 발전시키고 정형화하며 문화적 형성의 산물들로 가득 채우기를 원하셨다."[1] 우리는 하나님의 완벽하고 풍족한 창조물의 토대 위에서 그분이 하시는 창조의 일을 계속해나가는 하나님의 창조적 손이라고 할 수 있다. 밴 두저(Van Duzer)는 하나님의 완벽하지만 미완성인 창조가 비즈니스에 최적인 조건을 제공한다고 이야기한다.[2]

 

   시간에 따라 자원을 잘 배분함으로써 그것을 증대시키는 일은 이러한 창조 명령을 이행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하나님의 창조 명령에 순종하는 데 있어 금융이 도움이 되는 예로는 봄에 씨앗을 사기 위해 돈을 저축하는 것, 향후 광석을 채굴할 수 있도록 장비를 구매하려고 자본을 모으는 것, 주택을 구매하기 위해 대출을 받는 젊은 부부, 학교를 짓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는 공동체 등이 있다. 금융은 성장하는 데 필요한 미래중심적 자원 배분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는 다가오는 미래에 자원을 증대시킬 수 있는 큰 가능성을 지닌 이들에게 자원을 제공해주고, 빌려주지 않았다면 비생산적이었을 여유 자원을 빌려준 이들에게 그 증가분을 나누어준다. 금융이 없다면, 사람들은 당일에 얻은 자원, 혹은 이전에 축적해 놓은 자원만을 가지고 매일 살아가야 할 것이다. 금융이 없었다면 수 세기에 걸쳐 인류가 경험한 경제적 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빌리고 빌려주는 행위 없이 인류의 번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3]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창조물을 경작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돌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셨다.[4] 빌리고 빌려주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시간의 교차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금융과 관련된 의사 결정에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사람들은 단기간 세를 내는 사람들보다 좀 더 집을 잘 관리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지속 불가능한 활동에는 자금을 대기 어렵다. 소유한 삼림의 나무를 너무 빠른 속도로 베어버려 몇 년 안에 모든 나무를 고갈시킬 것으로 보이는 목재 회사한테 누가 돈을 빌려주려 하겠는가? 또한 금융은 운영상 필요한 천연 자원의 사용을 줄임으로써 가능한 자본의 증대를 이끌어낸다. 예를 들어, 어느 도시가 대중교통 시스템을 확대하기 위해 돈을 빌린다면, 이는 하나님의 탄소 자원을 더욱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되며, 시의 채권 투자자들에게 퇴직 소득을 제공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Richard Mouw, When the Kings Come Marching In: Isaiah and the New Jerusalem (Wm. B. Eerdmans Publishing Co, 2002): 11쪽.

Van Duzer, Why Business Matters to God: (and what still needs to be fixed), 35-38쪽.

Paul Mills, “Faith versus Prudence? Christians and financial security,” Cambridge Papers, Vol 4 No 1, March 1995 는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날마다 공급하심에 대한 믿음과 미래를 위해 계획하는 신중함을 가지고 재정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창세기 2:15의 창조명령을 넘어 피조물을 돌보는 것에 대해 보다 광범위한 성경적인 기초 설명을 보려면, Wright, Old Testament Ethics for the People of God and Wright, The Mission of God’s People를 보라.

금융은 정의와 사랑의 수단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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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은 정의와 사랑과 관련된 특정의 활동을 가능케 해준다. 우리는 월터스토프(Wolterstorff)의 개념, 즉 정의란 인간이 지닌 권리대로 사람들을 마땅히 존중하는 것이라는 개념의 의미를 사용한다.[1] 월터스토프의 유신론적 해석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사랑받을 영예로운 자격을 부여 받았다는 사실 하나에 이러한 인권이 기초한다고 본다. 따라서 "하나님과 인간은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인간을 해치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2] 이러한 하나님—인간의 관계로 인해 인권이 생겨났으며, 이에 따라 정의라는 개념도 형성되었다. 우리는 또한 월터스토프가 케어아가피즘(care-agapism)이라고 부르는 사랑의 "배려"의 개념을 사용할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의 번영 그 자체를 추구하고, 사람들을 인간으로서 마땅하게 존중해 주는 것이다.[3] 배려는 정의를 사랑 속으로 끌어오기 때문에, 배려로서의 사랑을 통해 성경적 사랑(아가페)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월터스토프는 이야기한다. "배려는 사랑하는 이들을 공정하게 대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배려는 자신을 사랑하는 전형적인 사랑,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예수님이 말씀해주신 사랑,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던 종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을 배려로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이런 사랑의 네 가지 모습에 대해서 통일된 이해를 할 수 있다."[4] 배려는 행동을 수반하며, 어떤 경우에는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위험이나 희생을 감수하는 것을 동반하기도 한다.

 

   배려를 통해 나타나는 사랑은 정의와 사랑과 같은 다른 기독교적 개념과 일관된다. 예를 들어, 크리스 라이트(Christ Wright)는 의로움과 정의에 관한 주요 성경적 주제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된 개념들이며, 이는 어떤 상황을 올바르게 회복하기 위해 "특정 상황이나 관계 속에서 무엇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나타내는 것들”이라고 말한다.[5]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민족을 정의와 의로움으로 축복하고자 하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 아브라함을 특별히 선택하셨다고 이야기한다.[6]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정의와 의로움으로 축복하시기 위한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다. 라이트의 주장은 이러한 사랑을 실제로 행해야 하는 이유를 우리에게 제시해준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로 존중하기 위해 그들의 번영을 이끌어내어 사랑을 실천해야 하고, 그렇게 그들을 축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랑과 정의로움은 누구를 위해 나타내야 하는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가르침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해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고(마22장, 막12장, 눅10장) 이는 앞선 모세의 가르침과도 일치했다.[7]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우리가 이전에 관계가 없었던 이웃을 포함해, 모든 이웃에게 사랑과 정의로움을 나타내야 함을 보여준다. 혹은 월터스토프가 말했듯이, 이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누구를 만나든지 이들의 필요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항상 기억하고 있으라고 명령하고 계신 것으로 본다."[8]

 

   월터스토프의 정의와 사랑에 대한 개념은 하나님께서 금융을 통해 의도하신 목적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금융은 다른 사람을 인간으로서 존중해주면서 이들의 번영을 추구하는 데 유용하다. 금융은 자원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금융을 통해 다시 배분된 자원은 사람들이 번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상호간 이익이 되는 자발적 방법으로 자원을 공유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는 하나의 탁월한 방법이 된다. 비록 유일한 방법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이것이 정의의 핵심이다. 만약 지금 당장 여러분에게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자원이 없지만, 이후에 증가분을 내게 조금 나누어 줄 의향이 있다면,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서로 자원을 빌리고 빌려주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일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금융은 다른 이들의 번영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서 개인적 친분이 없거나 가까이 살지 않는 이웃을 사랑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체계적인 법률 제도와 구조가 잘 잡힌 금융제도는 낯선 사람들끼리도 대출해주고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 해당 자원을 문제없이 되돌려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말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개인적 범위를 훨씬 넘어선 상호적 이익을 위해 자원을 공유할 수 있다. 모든 금융 체계가 이러한 방식으로 정의와 사랑을 구현하고 있진 않지만, 이는 가능한 일이며 또 권장되는 일이기도 하다. 채플린(Chaplin)은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서라도 "사랑이라는 핵심 규범을 구현"하고 이러한 제도들이 사랑과 정의의 "전달 매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한다.[9]

 

Wolterstorff, Justice in Love,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1), 90쪽.

Wolterstorff, 154쪽.

Wolterstorff의 '이타적 돌봄(care-agapism)'은 몇몇 방법에 있어 C.S. Lewis의 The Four Loves, (Harcourt, 1960)에 나오는 자선(charity)과 비슷하지만, "이웃을 공정하게 대하는 것은 그를 사랑하는, 그를 사랑하는 방법의 예시이다.(Wolterstorff, 83쪽)"라는 연결을 중요하게 만든다.

Wolterstorff, 109쪽.

Wright, The Mission of God’s People, 88-92쪽.

Wright, 92-94쪽.

Wolterstorff, 80쪽.

Wolterstorff, 132쪽.

Jonathan Chaplin, “Loving Faithful Institutions: Building Blocks for a Just Global Society,” TheOtherJournal.com, (April 15 2010).

http://theotherjournal.com/2010/04/15/loving-faithful-institutions-building-blocks-of-a-just-global-society/